“내 언어를 찾게 해준 여자들”“내 언어를 찾게 해준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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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언어를 찾게 해준 여자들”

🌊김파도(@justwomyn_xx1)

 
어쩐지 제목이 거창해졌다. 원래 쓰려던 제목은 좀 더 흐리마리한 "스며드는 것"이었지만, 제목에도 더 단단하고 정확한 언어를 쓰고 싶어졌기에.
어디서부터 돌이켜 훑어봐야 할까. 내가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마도 대학 시절부터였을 거다. 그저 "이건 너무하지 않나"라는, 부당함을 인지하는 감각으로 인해 관심만 가지던 것이 좀 더 본격적으로 내 삶에 들어온 건 2017년즈음이었지. 그저 화만 내고 있자니 속이 답답해서였을까? 여성주의와 무관한 용도로 만들었던 트위터 계정에서 여러 페미니스트 계정을 팔로해두고 있던 어느날, 어느 여성주의자분이 래디컬 담론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셨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치며 그 원인의 해결을 위해서 여성들이 실천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에 관한 날카로운 목소리에 '이거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인지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인식을 하고 있었지만 내가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지는 못했던 시절에 만난 단비를 별 무리 없이 마셨고, 난 긴 시간을 들인 후에 마침내 자타칭 래디컬 여성주의자로 살게 됐다.
분노라는 중요한 감정을 폄하하지 않되, 그 분노의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 실천하는 것. 나를, 다른 여성을 독립적인 개인이자 인간으로 대하고 남성을 경유하지 않은 독립적인 여성들의 카르텔을 만들기 위해 힘쓰는 것. 그리고 "나에게 관대해질 것." 다른 여성주의자분들의 말씀을 참고로 하며 스스로 다져나갔던 행동 원칙들이다. 여자를 인간으로 본다는 게 뭔지, 나에게는 어디까지 관대해야 하는 건지, 관대하게 군다는 건 정확히 어떤 행위를 말하는 걸지, 카르텔은 어떤 식으로 쌓아나가야 할지, 여성주의자를 대할 때 어디까지 선을 지켜야 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나 나름대로 해답을 찾아보며 조금씩 일상에서 여성주의를 실천해나가던 근래에도 명확한 답을 세우지는 못했다. 그야, 아무도 몰랐으니까. 2020년 들어 또 한 번 더 넓고 높은 영역으로 도약하고 있는 여성주의자들은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사람들이고 나 역시 이미 답이 정해진 정론의 길을 걷기보다는 한 번도 온 적 없던(소규모 사회를 제외한다면) 여성중심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길을 개척하길 택한 사람이니까. 시행착오는 당연했고 생각과 행동은 조금씩 더 명확해져갔다.
코로나 시대가 오면서 극단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자가 된 후로는 사실 사람이 좀 그리워졌었다. 여성들을 향한 공격은 거세졌고 하루가 모자라게 여성주의자를 향해 집단적 불링이 일어나는 트위터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수하고 트위터에 접속했던 것이며,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연대한 겁니다.) 그러던 어느날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 찾아왔다.
현실과 직접 닿아있는, 동시대의 언어로 여성들에게 말을 걸곤 하시던 이민경 작가님을 팔로하고 있던 중, 논문 완주 기원 메일링 프로젝트인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별 고민 없이 구독을 신청했던 것 같아. 그 후 도착한 4월의 첫 번째 편지에는 이런 단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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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나 여자들과 쏘다니던 시간에는 전혀 좁히지 못했던, 경험과 해석의 간극이란 대체로 언어의 부재 때문에 발생해. 그래서 논문이 마감되는 세 달의 시간동안 여성 간의 관계에 얽힌 언어를 성실히 길어 올리고 싶어. (중략) 그러고 나면 우리 사이에서 어떤 가능성이 생겨날까. 여자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나는 언제나 거기에만 관심이 있어. 코로나 시대의 사랑, 2020년 4월 1일자, 이민경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 어떤 프로젝트인지, 무슨 이야기를 할지에 대해 다정히 일러오는 해당 편지의 제목은 "여자들이 원래 그렇게 편지를 써"였다. 2020년 4월 1일. 스스로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한 지는 채 1년이 되지 않았을 시기였지. 여성에게만 애정을 쏟을 수 있음을 깨달은 동시에 '성애'에 대한 의문과 타인과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한 데 안고 있던 시기. 언젠가 한 번은 그 두려움과 의문에 관한 글을 썼다. 글은 이렇게 끝난다.
 
 
사랑의 이유는 아주 중요하다. 사실 어떤 감정이든, 이따금씩은 그 감정 자체보다 그런 감정이 빚어진 이유가 나에 대해 더 많은 걸 설명한다. 나 같은 경우 동경, 닮고자 하는 열망이 곧 상대에 대한 애정으로 변해왔던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성애에 대한 관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내가 품은 게 어떤 애정이든 사회에서 그게 성애로 해석되든 말든 내게는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
상대가 귀하다는 그 감각 자체에 충실해야지, 내가 하는 걸 무엇으로 규정하는지를 탐색하기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바라는지에 더 집중해야지- 다짐해본다.
글이란 알 수 없는 거다. 쓰다 보니 내가 쓰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가 돼버렸다. 다만 사랑이란 개념에 매몰되지도 사회의 수작질에 휘둘리지도 말고, 최선을 다해 인간과 살아가며 자기 삶을 개척하시길. 부디 자신이 중심에 선 삶을 사시길.
 
이제 와 고백한다. 이 글은 두려움과 의문으로 출발한 글이 아니었다. 여전한 두려움, 타인과 친밀한 관계가 되어가고 나와 상대의 것을 나눠갈수록 커지는 불안은 그 글에 담겨 있지 않았다. 성애고 뭐고-그 어떤 이름을 붙이든 사람과 제대로 교류하면 되지, 가부장적 성애 도식에 갇히지 말고 잘 해보면 되지, 내가 품을 마음이 '타인에게' 어떻게 해석되든 내 감정과 사람을 더 중히 여기면 되지. 참 깔끔한 결론 아닌가. 하지만 여전히 내겐 두려움이 있었다. 가부장제가 제시해온 괴상망측하고 폭력적인 사랑의 형태에는 진절머리가 난 지 오래지만, 난 그 이전에 다른 이와 가까워지는 것에 대해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곤 했다. 친해지고 싶은 이가 있어도 그와 친밀한 관계가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심적 거리감을 느끼는 상대와 함께 있더라도 쉽게 소외감을 느꼈다. 외로웠지만, 그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괴상한 성미라고 자조하기는 했지만, 또 예전보다는 훨씬 증상이 덜해졌지만, 내가 가진 공포의 근원에는 '내가 누군가를 아낄수록 상처받을 확률이 커진다', '가까워질수록 멀어질 때 아플 것이다', '애초에 시작하지 않으면 잃을까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체념이 숨어 있었다. 사람과 마주하기도 전에 멀어질까, 이 관계를 잃게 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던 나는 동시에 '그 어떤 관계도 영원불변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과 상대에게 진심이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모순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웹툰 <극락왕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만파식적 블루스인 이유기도 해. 나는 그랬다. 뭐가 맞는 길일지 알면서도 속내에서는 혼란이 휘몰아쳤다. 잃을까 무서워서 발걸음을 떼지 못했어. 여성주의적 실천, 여러 담론에 대한 소화는 잘만 하다가도 특정한 사람들이 소중해질까 두려워했다. 소중해진다는 건, 혹시나 상대와의 관계가 허물어진다면 그만큼 내가 감내해야 할 상처가 커진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이미 답을 알면서도 그걸 체화하기란 어려웠다. 인지하는 것과 진짜 대상을 나의 언어로 받아들이는 건 다른 일이었으므로.
다시 <코로나 시대의 사랑>을 받던 날 부근으로 돌아가자. 나름의 답을 알고는 있었으나 그 모든 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을 시절에 코로나 시대가 시작됐고 극단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게 된 후로는 조금쯤 외로워졌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고독이나, 가짜 외로움이 아니라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고 그럴 때쯤 온 <코로나 시대의 사랑>첫 번째 편지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들이 다정히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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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그 때 나는 스스로가 도무지 감당되지 않고 사랑하고 싶은 생이 내게 친절하지 않아서 자주 슬펐고 연결될 통로를 찾지 못해 외로웠어. (중략) 해석은 경험보다 늦게 도착하고 여성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중략) 여자들은 그렇게 자꾸만 서로에게 응답해. (중략) 여자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다른 여자가 불러 일으킨 무언가를 전하기 위해 굳이 편지를 쓰고 또 그 편지에 답장을 해. (중략) 그리고 그렇게 편지를 쓰는 여자들이 제 혼자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여자들이 왜인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만들어내는 장구한 역사에 저마다 속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코로나 시대의 사랑, 2020년 4월 1일자, 이민경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코시사비언분들이 많지 않을까 하여 비교적 장문을 옮겼으나, 혹시 모르니(<코로나 시대의 사랑>은 일부 인용만 가능하다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중간중간 생략을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이 긴 글이 어떤 글인지-앞으로 어떤 글을 쓸 건지에 대해 제대로 소개할 수 있겠네요. 이 글은 여자와, 즉 나 스스로와 마주볼 수 있게 된 뒤로-저를 직시하며 세상을 제 언어로 쓸 수 있게 된 한 레즈비언이 당신들께 쓰는 편지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고, 함께 선을 넘어준 분들께 드리는 편지이기도 해요. 열정을 가두기 위해 메마른 얼굴을 하던 (<코로나 시대의 사랑> 4월 8일자 참고) 어느 개인은 어느새 미약하게 남은 두려움을 안고 다른 여성들과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자들은 어쩌면 이미 내 안에 담겨 있던 것들, 가득한 물을 발견하고 잠겨 죽을 생각 하지 말라며 손을 내밀어준 걸지도 모릅니다. 제가 받은 것들, 그리고 되찾은 저의 언어를 다시 한 번 나누고 키우려고 편지를 씁니다. 제가 두려워했던 헤어짐과 어그러짐은 결국 인간을, 절 귀히 여겼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마음이 조금쯤 다정하게 물듭니다. 도입문에서는 거짓말을 했어요. 내 손을 잡길 망설이지 않은 여자들에 대한 얘기는 구체적으로 담기지 않은 편지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시간은 많고 첫 글에 그 모든 걸 담기에는 아주 많은 낮과 밤이 필요하기에 이 편지는 그 초입만을 담게 되었습니다.
어떤 다정함이, 어떤 솔직함이 당신에게도 스밀 수 있길. 당신의 언어로 세상을 구성하시기를 바라며. 6월의 첫 번째 편지를 마칩니다.
 

참고자료
  • 이민경, <코로나 시대의 사랑>,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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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마를 떼었습니다. 첫 글은 어딘지 아쉽고, 더 잘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곤 했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편하네요. 조금쯤 어리둥절한, 혹은 혼란스러운, 이제 막 발을 떼는 분들께 드리는 편지라고 생각하며 글을 썼습니다. 이제 막 발을 떼는 사람에는 저도 포함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편지 하나의 첫 단락만 쓰자는 기분으로 쓴 글이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마쳐진 것 같아 좋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성을 직시하고 함께 걸어가는 모든 분들께.
 
 
김후추 comment, '친해지고 싶은 이가 있어도 그와 친밀한 관계가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심적 거리감을 느끼는 상대와 함께 있더라도 쉽게 소외감을 느꼈다'를 적으신 분이 '어느새 미약하게 남은 두려움을 안고 다른 여성들과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하시는 것에 깊게 감명받았습니다. 저 또한 같은 고립감과 싸워왔기에 더 이 변화가 반갑습니다. 앞으로 파도님의 글에서 어떤 세상을 엿볼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같이 손을 잡고 서투른 걸음마를 떼 보아요, 우리.
김나무 comment, '애초에 시작하지 않으면 잃을까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불안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를 함부로 쌓아 올리지 못했던 과거가 겹쳐 보입니다. '영원불변한 관계는 없기 때문에 매 순간 진심이어야 한다'고도, 늘 머리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거기 푸욱 젖어드는 건 무서웠으니까요. '잃을까 무서워서 발걸음을 떼지 못했'던 과거에서 드디어 첫 걸음마를 시작했네요. 저도, 당신도 아직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겠지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걸어가면 되니까요. 설탕처럼 달달하게 사랑이 넘치는 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