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긋기 말고 선 넘기”“선 긋기 말고 선 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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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긋기 말고 선 넘기”

🧂김후추(@Phiwom208697)

 
이 글은 2015년 이후 여성주의자로 살아가며 메마른 얼굴을 했던 여성의 이야기이다. 새로운 언어를 만나 이전의 뭉툭했던 감정에 또렷한 이름을 붙여주는 과정이자, 그 언어를 통해 여성들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남기는 기록이다.
 
이 모든 것을 풀어놓기 이전에 어떤 계기를 만나 여성주의자로 살아가기를 택했는지를 빼놓을 수가 없어, 다른 듯 닮았을 여성주의자로서의 궤적을 먼저 간략히 풀어보고 싶다. '메르스 갤러리'로 여성혐오를 인지하고 분노하기 시작했던 사람 중 한 명인 여성의 이야기이다. 폭발적으로 오가던 미러링 게시글로 후련함을 느꼈지만 '꼴페미'에 대한 사회의 멸시를 봐왔기에, 낙인이 두려워 적극적으로 발언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접하고는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는 말 그대로 여성들이 다 죽을 것만 같다는 절망이 날 움직이게 했다.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에 씌워진 낙인이 더이상 두렵지 않게 되자 그때그때 소화한 이야기를 내 언어로 옮겨보게 되었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성혐오적이지 않은 언어를 자아내기가 벅찼다. 가부장제에서 자유로운 여성의 삶이 궁금했으나 성별 이분법을 타파한다는 온갖 이름의 젠더를 접하고 오히려 혼란스러워졌다. 풀리지 않는 궁금증과 의문이 점점 커져가던 무렵 탈코르셋 의제를 계기로 스탠스를 재정립했다. 탈노선을 표방하되 공적 사안에 연대하며 여성 서사 콘텐츠를 소비했다. 그러나 돌고 도는 논의 속에서 내가 내세운 '탈노선'은 아무런 의미값을 갖지 못했다. 내가 동의하는 의제들마다 사람들이 '래디컬 의제'로 부른다면, 그에 대체로 동의해온 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로서 6B4T를 실천하는 한편, 느슨한 연대를 지향했다. 2019년까지의 일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때때로 지독한 피로감을 느꼈다. 노선을 아주 살짝 틀어버리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진 스탠스를 이유로 친했던 사람들과 인연이 끊기고, 나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과는 신상정보를 조심하느라 선을 긋고 있는 상황에서 정서적 안정을 유지하기는 정말 어려웠다. 가부장제 보이콧의 일환으로 남성과 완전히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실천을 지속할 자신도 있었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뜻밖에도, 혼자 힘으로 뭐든지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큰 감정을 소모하지 않기 위한 방어 기제였는지 감정을 대하는 내 태도는 점차 사무적으로 굳어졌다. 내적으로 친밀감을 느끼는 여성들이 있어 때때로 즐거웠으나 당시 분위기상 친목보다는 선 긋기가 더 스탠스 유지에 유효했기에 나는 대체로 건조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의제를 실천하고 있는 만큼 후회는 없었다. 다만, 언제까지 '느슨한 연대'에 그쳐야 하나, 어렴풋이 내가 메말라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스스로를 몰아붙여 독립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고립시키고 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을 때 기적처럼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하 코시사)>가 내게 찾아왔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 : 작가 이민경님이 페미니스트의 친밀성과 섹슈얼리티 변동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좋은 대목을 공유하거나, 독자의 여성간 관계에서 갖는 고민과 사연에 편지 형식으로 답하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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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하기 때문에 외면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는 예은씨에게나 저나 이 편지를 받아볼 독자들에게나 무척 익숙하겠지요.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듣다 보니 이제는 그런 마음 같은 걸 갖고 있지 않다는 사람의 말을 도저히 곧이 들을 수 없어요. 자신의 속에 찰랑찰랑한 물을 가두느라 온갖 힘을 쓰기 때문에 겉으로 메마른 얼굴을 하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안의 강력한 힘을 누르는 데 진을 빼 놔서 힘이 든 여성들.
 
이 부분을 처음 읽었을 때 내 안에서 해일처럼 일어났던 일렁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말 그대로 날 세우고 있다가 무장해제 당한 것 같았다. 비장한 태도를 앞세워 감정을 등한시한 게 내가 했던 가장 큰 실수였다. 나는 여중-여고를 나와 이미 여성들와의 친밀감과 연대감, 정서적 연결과 끌림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선을 긋고 혼자 모든 감정을 감당하려 하니 '메마른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감정은 무뎌진 게 아니라 내가 짓누르던 만큼 차올라서 찰랑찰랑하게 버티고 있던 거였다. 그가 편지 속에서 말하는 '단절감이 주는 안정감과 건조함으로부터 연결감이 주는 기대와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이 지금의 내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음을 깨닫고 울컥, 눈물이 치밀어올랐다.
<코시사>를 통해 접한 단어 하나하나는 여자가 중심이 된 세계관의 언어로 탈바꿈했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여성들과 이제 마악 흡수한 새로운(그러나 우리 안에 있었을) 언어로 전례없이 넓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경하고 놀라운, 그리고 반가운 경험이었다. 점과 점이 아무런 장애물 없이 부드럽게 연결되고, 그 연장선에 있는 점을 향해 망설임도 없이 이어진다는 결과까지도.
여태껏 소화하기 힘든 감정이 들끓어오를 때면 그 감정을 곱씹어 명확히 언어화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여왔다. 머릿 속에서 이 단어 저 단어를 굴려보며 이 이상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 싶을 때까지 한 문장을 붙들고 골머리를 썩였다. 언어화에 공을 들이는 만큼 내 세계관을 이해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강박적으로 말을 고르려 했다. 그러던 와중에 코시사의 언어를 체득한 여성들이 단어 하나만으로도 공통된 맥락을 읽어내고는 기꺼이 선을 넘고, 때로는 선을 그어가며 친밀감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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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바라보는 레즈비어니즘은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이고, 이 때 여성의 사랑이 향하는 여성인 상대란 우선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포함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두려워할까요. 여성이 자신을 포함한 여성들을 사랑하기를 미뤄 두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일이란 그것이 미루어진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 외에 또 있을까요. 제가 아는 한, 행여나 건너갔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까 주저하던 다리를 건넌 여성들은 아무도 그 선택을 돌이키고 싶어하지 않아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여성인 상대를 믿고, 그 반대급부로 여성을 사랑하지 않는 세계관을 더이상 못 견디겠다. 여성을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보니 그 차이는 더 극명했다. <코시사>가 여자들에게 언어를 되찾아주었다는 표현은 코시사를 구독하는 분들과 대화할 때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빈도로 등장한다. 비단 코시사가 화제일 때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에도 불쑥불쑥 코시사의 언어가 등장했다. 나는 이 맥락에서 <코시사>가 여성들에게 제 0언어로 기능할 것이라 확신한다. 가부장제의 언어가 아닌, 여성으로서 여성을 바라보는 다정한 언어로.
오랜 시도에도 언어의 부재로 내 경험을 해석하는 데 애를 먹었던 나는, 언어를 찾은 후 과거 5년간의 경험을 새로 해석해 메울 수 있었다. 내가 가진 단절감을 추스리고, 스스로 그었던 선을 내 발로 넘었다. 강박적으로 말을 고르는 과정에 속으로 삭혀내던 감정들을 해방했다. 전략적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멈추고, 완성도에 대한 부담을 버리고, 우선은 내게 새로 와닿은 언어로 즐겁게 입을 틔웠다. 가까워지고 싶은 여성들에게 다가가 같이 선을 넘자고 제안했다. 이 글은 그렇게 여자 셋이 뛰어넘은 선 반대편에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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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 이에 의미와 긍지를 부여하기를 간절히 원하던 여자들은 자신을 부르는 피리소리를 듣고서야 파이를 구울 힘을 얻어요. 흩어져야 했던 여자들이 서로를 부르는 피리 소리에 들뜨는 마음처럼 부풀어 오르는 파이 반죽. 그렇게 자기착취와 희생의 역사 위에 다시 쓰이는 상호의존과 지탱의 역사.
 
이제 이 글은 새로운 언어를 만나 이전의 뭉툭했던 감정에 또렷한 이름을 붙여주는 과정이자, 그 언어를 통해 여성들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남기는 기록이다. 그리고,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김후추라는 여성이 내민 손이다. 당신을 부르는 피리 소리다.
 
 
참고자료
  • <코로나 시대의 사랑> 4월 두 번째 편지 '아무도 돌이키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 <코로나 시대의 사랑> 4월 첫 번째 편지 '원래 여자들이 그렇게 편지를 써'
  • <코로나 시대의 사랑> 4월 네 번째 편지 '피리 소리에 들뜨는 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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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한 글에 담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글의 톤이 들쭉날쭉한 것은 실제로 감정이 들쭉날쭉 날뛰어서 그렇습니다. 막막함과 외로움, 흥분과 기대, 아주 약간의 부끄러움과, 애정을 담았습니다. 코시사의 언어가 제 삶에 찾아온 것이 무척 반갑고 기뻐, 서투르지만 날것의 기록을 발자취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여성의 언어를 레퍼런스 삼아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 멋지지 않나요? 제 레퍼런스가 되어주실 분들이 더 늘어났으면 합니다. 여성의 언어가 점점 확장되는 가운데, 더 많은 삶을 언어화해보고 싶어요.
 
김파도 comment, "제 레퍼런스가 되어주실 분들이 더 늘어났으면 합니다." 분명 크고 작게 다른 삶을 살아왔을 텐데도 각 단락의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메마른 얼굴 속에 열정과 애정을 눌러담아 왔던 시절을 넘어, 대단한 자기검열을 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말을 이해하고 그 레퍼런스가 여성의 언어임을 아는 사람들이 어떤 언어를 새로 탐색해나갈지 기대가 돼요. 솔직한 글 반갑게 읽었습니다.
 
김나무 comment, 큰 감정을 소모하지 않기 위한 방어 기제로 고립을 선택했던 과거, 타인의 이야기이지만 마치 제 일처럼 느껴지는 건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겠죠. 미리 서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닌데 각자의 언어로 결국 비슷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는 게 무척이나 재미 있습니다. 그게 각각 다른 톤으로 적혀 내려가 있다는 것도요. '선 넘기'는 선을 넘어 가는 걸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상대가 있기에 가능한 거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글이라 무척 좋았습니다.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