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경의 언어를 만나고”“이민경의 언어를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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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경의 언어를 만나고”

🌳 김나무 (@K7U3sof0Aqxj9SN)

 
첫번째 글로 뭘 쓸까 고민을 하다가, 내가 최근에 쓰려고 시도하던 몇 가지 글들은 각종 여성주의 컨텐츠에 대한 분석글이곤 했으나 이 웹진의 타이틀을 ‘언어와 삶’으로 정해 여자들이 자신의 삶을 언어화 해나가기 위해 시작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역시 나의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까?
‘해석은 경험보다 늦게 온다’는 말처럼 여자들이 꺼내어 놓는 언어는 완벽하게 새로운 말들이 아니었고, 지금껏 내가 경험해 왔던 일들에 해석을 부여하는 도구였다. 나의 세계관이 더욱 명료해졌고 그 자체로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한 것은 사실이나, 없었던 걸 갖게 된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던 세계의 발견이었다. 굳이 끄집어내어 호명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으로 흘러가 버리고 말던 나의 세계. 너무나 파편화 되어, 틀린 것이나 옳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어 왔던 나의 감정들.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나 하나를 바꾸는 게 쉬워 손 쉬운 선택을 내려버리던 나와, 그래 왔던 많은 여자들. 이상하다고, 아닌 것 같다고 느끼는 내 감각을 의심하는 것이 바깥 세상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보다 쉬웠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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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2007.
 
그러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존재 자체가 틀린 사람이었다. 주변에서, 특히 엄마는 끊임없이 나를 향해 ‘너는 왜 그래?’라는 질책 섞인 물음을 던졌고, 나는 이 세상에 올바른 방법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자기혐오가 강한 아이로 자라났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때의 엄마는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인데(아직 내가 나이를 덜 먹었지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으니까 이해해야 하는걸까? 정말 그럴까? 사실 잘 모르겠다. 내 나이의 두배가 된 지금도 엄마는 여전히 나를 이해 하지 못하고, 애써 이해시키려 해도 여전히 의미가 없었다. 차라리 내가 그에게 이해 받을 것을 포기하고 감정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독립해 버리는 게 가장 적절한 전략이었던 것 처럼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창 밖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옆에서 잠을 자고 있는 나의 고양이를 바라 보며 생각한다. 물론 나는 출산과 육아를 선택하지 않을 거지만 내가 고양이를 케어 하는 방식에서 그걸 좀 연상시켜 볼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고양이를 데려 와 내가 책임지겠다 각오 하고서 내가 그토록 바래 왔던 나의 머물 공간(居場所)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건 나와 상호작용 하고 있는 이 고양이의 존재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일 뿐, 이 고양이가 특정 행동을 하거나 특정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은 아닌 거였다. 나는 이 고양이를 사랑하지만 그건 정말로 얘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거고, 내 말을 잘 듣고 ‘예뻐서’는 아닐텐데. 내 고양이는 아주 아주 사랑이 넘치지만 그건 나에게 ‘예쁨 받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순수하게 자기 의지로 애정을 표현하는 행동이고, 나는 마찬가지로 고양이를 예뻐하고 귀여워 하지만 귀엽다는 감각은 지나치게 인간중심적인, 인간에 비해 작고 약하고 폭신폭신한 생명체를 대할 때의 반응인거다. 내 고양이가 귀엽고 사랑스럽긴 하지만 그건 분리해서 생각 하도록 하자. 그러니 나는 내 고양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 보고 사랑하고 있고, 내 고양이도 나를 향해 자신의 의지로 애정을 표현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고양이 이야기를 하고 나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엄마는 어렸던 나에게 왜 그랬을까? 그는 역시, 특히 나 같은 인간을, 육아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던 게 아닐까? 자기 확신이 없는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낳고 그게 딸이라면, 자기혐오는 딸에게로 옮겨져 가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세상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거에 대해 마치 자신이 오답을 만들어 낸 것 마냥 굴던 게 아닐까? 물론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특히 한국에는, 그런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을 것 같지만 말이다. 한국 여자들 모두 힘내자. 이미 마이너스까지 깎아 먹은 자존감을 나이 먹고 쌓아 올리기란 결코 쉽지는 않지만, 절대로 불가능 한 일도 아니니까 우리 함께 자존감을 쌓아 올리고 건강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살아가자. 온전히 두 발로 땅을 딛고 설 수 있는 독립적 성인이 되자.
 
덕분에 기억이 남아 있는 어린 시절부터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될’, ‘틀린’ 사람으로 정의 되었던 나는 이런 나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바깥의 언어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겨우겨우 발견해 낸 것이 남성의 언어였던 것은, 지나치게 남성중심적인 이 사회에서는 필연적인 결과였을 것이다. 그것은 소설이기도 영상물이기도 했고 그 외의 어떤 창작물이기도 했는데, 그 속에서 내가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었던 대상은 마찬가지로 필연적 결과로 남성 화자인 주인공이었다. 그 남성 인물이 쏟아내는 감정에 공감했고 그걸 마치 나의 이야기인 것 마냥 느꼈다. 어느 순간엔가, 내가 느껴본 적 없는 감정들까지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십 년이 조금 더 넘는 시간 동안 나는 그걸 마치 나를 구원한 성서 같은 것으로 주워 섬기고 있었는데, 십 몇년 째 되는 즈음에 누군가가 나와 내가 좋아하던 그걸 보고 ‘그것들은 어렸던 너에게 결코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고, 그건 정말 정말로 사실이었다.
극중에서 여성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었으나, 쉽게 예상 가능하듯이 여성 인물은 어디까지나 대상화 되는 객체로 그려져 있었다. ‘첫사랑에 마음 졸이는 여고생’, ‘남성 화자의 첫사랑인 소녀’ 뭐 그런 류의 틀에 박힌 것들. 그나마 좀 인간적으로 느끼고 행동하는 성인 여성 인물이 등장했다 싶었을 땐, ‘눈에 띄게 아름다운 외모 탓에 주변에서 붕 떠 있는 존재’라서 주변에 녹아 들지 못했고,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외모 탓에 다른 여성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아 실질적인 피해를 입고 힘들어 하고 괴로워 하던 인물로 그려졌다. 하여튼 남자들의 상상력이란 빈곤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인데, 지금에나마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뿐 그 때는 그걸 의심 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만이 나에게 있어 나의 존재를, 그리고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법’을 알려주는 언어로 작용했었고, 기어코 나는 스스로를 ‘남성적 자아’로 인지하게 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인지하는 ‘나’는 생각하고 말하고 꿈꾸고 행동하는 ‘인간’인데 남성들이 그려낸 여성 인물은 그렇게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 방법 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스스로를 그렇게 인식하는 것과는 별개로 현실에서 여성일 수 밖에 없는 나는 결국 ‘소녀’이거나 ‘아름다운 여성’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세뇌 당하곤 하는 것이었다. 마치 그 방법 밖에 여성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나마 현실에서 여성으로써 겪는 차별적 위치를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트랜스젠더 같은 걸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걸까? 아무튼, 그래서 약간 전형적으로 남성 약자라는 존재들에 관심이 갔었고 ‘페미니즘은 모든 약자를 위한 운동’ 같은 이야기를 주워 섬기고 살았더랬다.
 
그리고 그 오랜 흑역사들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건 당연히 페미니즘을 배우고 실천에 옮기면서 였는데, 머리로 아는 것과 내 감정이 정리 되는 것 사이에는 아주 큰 간극이 존재하고 있었다. 일종의 관성이기도 하지만, 여태까지 십 몇년 간 좋아해 왔던 걸 한 순간에 털어내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나의 삶 그 자체와도 밀접하게 얽혀 있어 완전히 깔끔하게 떼어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이 그려내는 좁은 세계의 언어를 더 이상 참고 버텨가며, 동시에 나 스스로를 혐오해 가며 즐거워해 줄 비위 같은 건 남아 있지 않아서, 몇 가지의 계기를 통해 어쨌든 거기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뭐가 기다리고 있었냐면, ‘그럼 이제 나는 무엇으로 나를 설명해야 하지?’ 하는 의문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기는 했으나, 늘 그 동력을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감정에서 찾고 있었다. 지금껏 남성을 사랑하던(혹은 그런 줄 알았던) 나를 버리고 거기에서 벗어나자, 고질적인 무기력증과 겹쳐 아무 것도 못 하게 된 내가 남아 있었다.
 
친구가 나를 가리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인분의 몫을 하며 살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도 오랜 기간, 타인의 선의에 기대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 형태를 지향했고 가능하면 타인들과 깊게 엮이고 싶지 않아 했다. 단단하게 뿌리 내리고 있지만 때에 따라 흔들려 가며, 뿌리가 흔들리지는 않을 정도로 한 발자국 뒤에 물러나서 존재하고 싶었다.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흔들리고 나를 잃어 버리게 되는 것이 싫었고, 언제나 중심을 지키고 있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나에게 무언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사그라든 건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그러니 나는 더 이상 내 몸을 전부 내던져 가며 타인과 깊게 관계 맺는 것을 그만두기를 선택했고, 나에겐 고양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건 비교적 손쉬웠다.
그러나 동시에, 무언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자기 표현의 동력이 되었던 나에게 있어 좋아하던 대상이 사라졌다는 건 나를 들여다 볼 도구를 잃은 거였고 표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사라져 버렸다는 뜻이었다. 머리를 좀 더 말랑말랑 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뭘 해야하지? 종이로 된 만화책을 좀 볼까, 영화를 볼까? 하다가도, 나의 페미니즘적 지향과 맞아 떨어지면서 나에게 인스피레이션을 얻게 해 주는 컨텐츠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대로 나는 길을 잃어 버린 채 방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민경의 언어를 만났다. 아니 사실은 그의 이름과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거리를 두고 살다가, 작년 연말의 일을 계기로 그의 세상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지금 일본의 도쿄에 살고 있다. 내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 하다가, 일본어로 한국의 페미니즘 조류를 이야기 하는 블로그를 써 볼까 하는 생각에 도달했다. 작년에 일본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국 페미니즘을 조명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걸 보며 한국의 페미니즘 이야기가 일본에서도 수요가 있으리라 짐작했고 내 언어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건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도 생각했다. 물론 그와 동시에 일본에도 조금 더 한국의 페미니즘을 알리고 싶었다. 그 생각을 떠올려 계획을 세우고 있던 즈음 일본의 한 출판사에서 한국의 페미니즘과 일본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책이 발간 되었고 관련하여 토크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런 걸 하는구나, 하고 넘겼을텐데 블로그를 쓰려면 일본의 상황도 좀 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 자리에 참가 했다. 거기에선 이민경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왔고,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도 했다. 그러나 이어진 토크에서 나는 답답함을 느껴 버리고 말았다. 출연자로 거기 앉아 말하던 여자들은 모두 기혼이었고, 페미니즘을 이야기 하는 그 자리에서 ‘육아’ 문제나 ‘남성 파트너’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말했다. 결국 한국과 비슷하게 마이크를 쥐고 크레딧을 챙기는 건 기혼 여성들에게나 허락된 걸까? 한국에서는 이미 그에 대한 반발로 비, 반혼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기혼 여성들과 분리하자는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그 아이디어에조차 가 닿지 못하는 일본 여성들과,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민경 작가의 최신 저작이었던 <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을 당장에라도 읽고 싶어 졌다. 다른 무엇보다 나와 자매들의, 현 시점의 우리의 이야기를 정돈된 언어로 제련 해 이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를 향해 연결 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가 크게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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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탈코르셋 운동의 대표여서 이 책을 쓴 게 아니라 아직 탈코르셋 운동과 닿지 않은 사람들, 나보다 좀 더 연장자들에게 '이 운동은 어떤 의미가 있다'는 식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었다. (중략)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도 탈코르셋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하면 '어떤 파(派)'겠구나 라는 이미지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과 화해를 시도하고 싶었다." 유지영, <[인터뷰] <탈코르셋:도래한 상상> 작가 이민경 "반감 갖는 여성들, 이 책 읽었으면">, 한겨레 뉴스, 2019.09.08.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568078
 
그렇게 나는 연말의 긴 연휴를 앞두고 이민경 작가의 저작을 잔뜩 샀고, 연휴 동안 책을 읽으며 빠르게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 4월, 이민경의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 찾아왔다. 4월 2일 아침, 간밤에 메일함에 도착한 편지를 꺼내 읽던 순간에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내렸다. ‘여자들이 원래 그렇게 편지를 쓴다’던 그의 말에 화들짝 놀라 ‘큰 비밀을 들킨 듯한 얼굴’을 하며 나의 과거를 떠올렸듯이, 그의 편짓글로 ‘누군가가 나를(여자들을) 바라본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잊고 살았던 것일 뿐 나에게 경험한 바가 없는 게 아니듯이, 옛날의 나는 끊임없이 글을 쓰고 무언가의 형태로 내 세계를 표현하려고 했고 동시에 그걸 누군가에게 전해 나를 더 깊게 알아주기를 바랐고, 마찬가지로 상대도 나에게 그런 글을 써서 보내주길 원했었다. 그리고 그 수신인들은 아주 아주 당연하게도, 모두 다 여자였다. 내 세상을 들여다보고 말하게 만드는 인스피레이션을 주는 건 남성의 언어라고 생각했고 바로 그걸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거라고 믿었지만 결국 내 세계를 나누어 나를 읽어내 주길 바라고 있던 상대는 그 수많던,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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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사랑에 대해 듣는 사람 가운데 누가 나의 사랑일까, (중략) 편지를 쓰게 만드는 사람과 편지를 받는 사람 가운데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후략) 이민경, <코로나 시대의 사랑>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발로, 2020.05.25.
 
내 경험들을 끄집어 내어 언어화 할 수 있는 도구가 없어서, ‘여성들에게는 늘 해석이 경험보다 늦게 오는’ 거여서, 방법을 몰라 남성의 언어를 빌려왔던 나는 필연적으로 여성인 나의 신체를 혐오하게 되었다. 내 신체가 놓여져 있는 현실의 나와 내가 처한 주변 환경은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 마냥 느껴졌다. (물론 일부는 사실일 것이다) 나의 정신이나 이성은 남성들의 창작물 속을 떠돌아 다니며 그들과 같이 사고하고 느끼며 자유롭다고 느꼈다. 자유로운 이상과 가능성이 제한된 현실 간의 괴리를 도저히 극복할 줄을 몰랐고, 내 여성인 신체를 가지고 남성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 가는 방법이란 결국 성애의 대상이 되는 것 정도 뿐이라서 더욱 더 강력하게 코르셋을 조이고, 또 더욱 커다란 자기혐오와 바디 디스포리아로 나아가곤 했다.
그러니까 이제서야 만난 이민경의 언어는, 나를 나 자체로 이 세상과 화해하게 만들었다. 여자로 태어나 살아 온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손에 잡히지 않아 흩어지는 모래알 같이 아무도 이름 붙여주지 않아 섞여 들어 간 그 낱낱들을 하나 하나 호명해 내고, 그게 여자들의 역사 속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그걸 알게 된 순간, 내가 더 이상 이 세상에서 홀로 붕 떠서 부유하고 있는 이질적 존재가 아니라 선형적인 역사 속에 똑바로 발 붙이고 서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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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편지를 쓰는 여자들이 제 혼자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여자들이 왜인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만들어내는 장구한 역사에 저마다 속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역사를 잃은 존재인 여성들은 이럴 때의 원래, 라는 말에는 개개의 경험이 함부로 규정되는 듯해 느껴지는 거부감보다 놀라움과 안도를 더 많이 발견한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 이민경, <코로나 시대의 사랑> 여자들이 원래 그렇게 편지를 써, 2020.04.02.
 
그의 첫 저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는 말 그대로, 우리에게는 정말이지 언어가 필요했다. 여자들에게 해석은 경험보다 늘 늦게 왔기 때문에 누군가의 언어로 나의 경험이 설명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에게 호명되기 전까지 아무 것도 아닌 거라고 여겼던 경험이었지만 말이다. 찾아 헤매다 못해 남성의 언어를 내 것인 마냥 착각하던 시기를 살았지만, 그 언어는 결국 나를 설명하지 못했고 나와 세상 사이의 간극을 더욱 더 벌려 놓을 뿐이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여성들이 여성을 사랑하고 또 자신을 사랑하면서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고 거기에 응답 받는 경험을 했더라면, 각자가 갖는 파편화된 경험들을 조금 더 일찍 엮어 보일 수 있었을텐데. 그러나, 결국 이민경의 언어는 여자들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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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바라보는 레즈비어니즘은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이고, 이 때 여성의 사랑이 향하는 여성인 상대란 우선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포함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두려워할까요. 여성이 자신을 포함한 여성들을 사랑하기를 미뤄 두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일이란 그것이 미루어진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 외에 또 있을까요. 제가 아는 한, 행여나 건너갔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까 주저하던 다리를 건넌 여성들은 아무도 그 선택을 돌이키고 싶어하지 않아합니다. 이민경, <코로나 시대의 사랑> 아무도 돌이키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2020.04.08.
 
그리고 그걸 알게 된 여자들은 이제 과거로는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내가 살아 있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는 여자들. 자기가 느끼고 생각하는 게 세상에서 너무도 이질적이라, 동의 받거나 이해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고 자기 검열을 하느라고 결국 아무 것도 못 하게 되곤 하던 여자들이, 그리고 내가, 더욱 더 많이 자신의 언어를 찾아 자기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자들의 목소리의 총량이 늘어나 피리 소리로 더욱 더 많은 여자들을 불러 모을 수 있도록. 이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의 세뇌로부터 벗어났고 자신을 죽인 채 남성의 노예로 살지 않기 위해 남성애를 탈출 했고,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인 자기 자신을 발견 해 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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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어야 한다. 넘기 전에는 알 수 없으므로”
더 열심히 생각하고 말 하고 표현해내자. 그걸 통해 자기 자신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서로 세계를 나누고 사랑하자. 누군가가 자아내는 언어에는 그 사람만의 세계가 담겨 있고, 여자들이 그려내어 보여주는 세계를 사랑하니까. 그러니 나 또한 열심히 내 언어를 길어 내어 세상에 내 보이겠다. 나에게 ‘선을 넘어’도 된다고 말하는 여자들 덕분에 한 걸음 나아 왔으니, 우리 함께 선을 넘어 내일로 나아가자.
 
 
사랑을 담아, 김나무.
 

참고자료
  • 이민경, <코로나 시대의 사랑>, 2020.
  • 이민경,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 한겨레출판, 2019.
  • 이민경,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봄알람,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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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글입니다. 여전히 ‘이런 내용으로 괜찮을까?’하는 불안감이 남지만, 어쨌든 자기 확신을 갖고 목소리를 내자는 말을 하고 있으니 그걸 실행에 옮길 때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말해 나갈 거라는 다짐을 새기며, 이번에 차마 다 쓰지 못한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합니다. 다음이 꼭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거죠. 우리에겐 시간과 기회와 애정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게 있다는 믿음으로 저는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끊임없는 자기 검열에서 벗어나 가벼운 맘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함께 해 주시는 분들도, 이걸 보시는 분들도요. 셋이 모이면 원이 생겨납니다. 여자들은 서로를 바라 보는 시선으로 둥근 공간을 만들어 냈습니다. 둥그런 언어와 삶, 오래오래 사랑합시다.
 
 
김후추 comment, 가부장제의 언어/남성의 언어로밖에 말하는 법을 몰라, 이해받기 위한 글을 쓰기 위해서 오랫동안 골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성의 언어를 접하고 그 언어로 여성들과 연결되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그동안 언어가 부재했음을 깨달았어요. '내 세상을 들여다보고 말하게 만드는 인스피레이션을 주는 건 남성의 언어라고 생각했고 바로 그걸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거라고 믿었지만 결국 내 세계를 나누어 나를 읽어내 주길 바라고 있던 상대는 그 수많던,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이었다'. 우리는 여성의 언어 구사자가 되었네요. 나무님의 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어 기쁩니다.
김파도 comment, "나는 끊임없이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기는 했으나, 늘 그 동력을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감정에서 찾고 있었다." 여러 부분에서 공감도 하고 입이 근질근질해지기도 했지만, 특히나 마음에 남은 문장입니다. 싫어하는 게 많은 사람인 줄만 알고 살다가 왜 이렇게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게 없냐며 자책하는 세월을 거쳐 나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발견한 지금, 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을 사람들이 여기 이렇게 모였네요. 솔직한 첫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선을 넘는다는 게 이렇게 재밌는 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