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略字), 성경책명 줄여쓰기 원칙 - 기독교타임즈

생성일
Mar 21, 2020 04:1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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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헷갈리는 질문 하나. 우리말 성경에서 ‘에’라는 약자가 가리키는 책은 어떤 책인가? 에스라인가, 에스더인가? 신구약성서에서 ‘에’로 시작하는 책이름은 모두 네 권이다. 그 책들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에스라, 에스더, 에스겔, 에베소이다. 그런데 이 네 권 중에서 ‘에’라는 약자는 두 번째 책인 에스더서를 가리킨다. 그 나머지 세 책은 각각 ‘스’(에스라), ‘겔’(에스겔), ‘’엡’(에베소)이 된다. 우리말 성경의 ‘성경책명 약자표’는 ‘책명 줄여 쓰기’ 방식으로 보통 각 책의 첫 음절 첫 글자에 해당되는 글자를 그 책의 줄인 이름으로 표기하는 형식을 따랐다(66권 중 25권이 이렇게 표기되었다). ‘창’이 창세기, ‘출’이 출애굽기, ‘레’가 레위기를 나타내는 것은 이런 방식을 따랐기 때문이다. 이 방식을 존중한다면, 신구약성서에서 ‘에’로 시작되는 첫 번째 책인 에스라가 ‘에’가 되어야 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책에서 ‘에’라는 약자는 에스라, 에스더, 에스겔, 에베소 중에서 그 두 번째 책인 에스더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현재 우리가 읽고 성경책의 머리말에는 여기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 역으로 추산해 볼 때 우리말 성경책 이름의 줄여 쓰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는 듯하다. 우선은 첫 음절을 약자로 표기하되, 그것이 다른 책의 줄여 쓰기와 겹치게 되거나 혼란을 야기하게 될 경우, 개음절로 끝나는 첫 음절의 글자에 두 번째 음절의 초성이나 종성의 글자를 받침으로 따서 한 음절로 만들어 확정하거나(66권 중 15권이 이런 원칙을 따랐다), 아니면 두 번째나 세 번째 음절의 글자를 줄여서 약자로 확정했다는 것이다(66권 중 9권이 여기에 해당된다). 사사기를 ‘삿’으로, 요엘을 ‘욜’로, 아모스를 ‘암’으로, 요나를 ‘욘’으로, 스바냐를 ‘습’으로, 마가복음을 ‘막’으로, 에베소를 ‘엡’으로, 디도서를 ‘딛’으로 부르는 것은 개음절로 끝나는 첫 글자에 두 번째 음절의 초성을 받침으로 활용한 경우로서, 각각 이사야(사), 요한복음(요), 아가(아), 요한복음(요), 에스라(스), 마태복음(마), 에스더(에), 디모데(딤)와 구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우리 설명은 다만 추정일 뿐 우리말 성경의 분책의 약자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여전히 궁금한 채로 남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구약의 여호수아를 왜 ‘수’로, 이사야를 왜 ‘사’로, 예레미야를 왜 ‘렘’으로 줄여 써야만 되었을까? 신구약성서에서 ‘여,’ ‘이,’ ‘예’로 시작되는 책은 여호수아, 이사야, 예레미야 밖에 없는데, 왜 각각 ‘여,’ ‘이,’ ‘예’로 표기되지 않고, 굳이 ‘수,’ ‘사,’ ‘렘’이라는 글자로 약어 표시를 하게 되었을까?
궁금증은 어떤 책이 둘이나 셋으로 나뉘어져 있을 경우 그것을 나타내는 줄여 쓰기 방식에서 더 커진다(66권 중 17권이 이 원칙을 따르고 있다). 가령 열왕기상이나 열왕기하는 ‘왕상’과 ‘왕하’로, 고린도전서나 고린도후서는 ‘고전’과 ‘고후’로 표시된다. ‘열상’이나 ‘열하’가 아닌 ‘왕상’이나 ‘왕하’가 되었다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구약에서는 ‘상’ ‘하’로 불리던 것이, 신약에 와서는 ‘전’ ‘후’로 표기되는 난맥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세 권으로 된 책은 그냥 ‘일,’ ‘이,’ ‘삼’으로 표기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분야에 정통한 성서학자들은 그 이유를 한문성서나 일본어 성서의 약자 체계의 영향이라고 본다. 우리말 성경을 공부하면서 때로는 한문성서나 일본어 성서를 들여다보아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나이다.”(시 143:8)
 
 
왕대일 교수 감신대, 구약학
관리자 li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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