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보이>(<Tomboy>,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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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남자. 윗사람과 아랫사람, 내국인과 외국인, 친구와 적. 이렇게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눠서 생각하는 것은 참 편리합니다. 0과 1 사이 무한히 많은 숫자들을 전혀 생각할 필요 없이, '0 아니면 1'이라는 성긴 틀로 다른 사람들을 분류하여 그들을 '안다'고 생각하며 룰루랄라 사는 삶의 방식은 매우 매혹적입니다.
한편으로 내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그렇게 재단되는 것 너무나 아픕니다. 나는 0이 아닌데, 그렇다고 1인 것도 아닌데. 그런 기준으로 나누지 않고 나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주길 내심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나의 모습과 남들이 봐줬으면 하는 나의 모습이,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 경우엔 더더욱 곤란한 문제가 됩니다.
<톰보이>는 여자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몸이라는 감옥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소년(/소녀), '미카엘'(/'로르')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방학 기간 중 새로 이사를 와서, 주변 이웃들이 자신의 이름이 '로르'라는 것을 모르는 틈을 타 자신을 '미카엘'로 소개하고 친구들과 어울립니다. 머리도 짧게 쳤고, 운동도 곧잘 하고, 말투와 행동도 다른 사내 아이들을 따라해본 미카엘이기에, 남자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게 됨은 물론 다른 여자아이 '리사'의 환심까지 사게 됩니다. 친구들에게 얼떨결에 진실된 자아를 드러냄으로써 몸을 속인 것이 되어버린 미카엘은 방학이 끝나갈 때 쯤,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되며 다시 '로르'로 돌아와야 하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2011년 작인데 셀린 시야마(Celine Sciamma) 감독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으면서 국내에서 작년에 재개봉 했었고, 신작이 아니다보니 금방 왓챠로 들어오게 된 것 같습니다. 감독과 연인 관계였던 배우 아델 아에넬(Adele Haenel: <워터 릴리스>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시야마 감독과 호흡을 맞췄습니다.)이 밝혔고 시야마 감독이 인정한 바 있듯이 시야마 감독은 동성애자인데요, 그의 작품 중 어렸을 때의 젠더/섹슈얼리티에 대한 고민, 그 과정에서 겪은 다른 사람들과의 마찰 등이 자전적으로 가장 잘 반영된 영화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2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아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훨씬 유연하게 고민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서도 친구들끼리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일도 많은 10살 정도의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해 이런 이야기를 풀어가니 맑고 묽은 마음으로 몰입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한없이 폭력적이고 우울한 영화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개인마다 받아들이는 건 다르겠지만, 저의 경우 이 영화의 카메라가 로르/미카엘의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난보다는 고마움, 이해와 용서를 더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로르가 자신 안에 있는 미카엘을 찾고, 다듬고, 인정하는 과정 속에서 주변 인물 각각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감독이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그를 따뜻한 시각으로 그려내려 애쓴 흔적이 곳곳에 드러났습니다.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세상에 '질문'을 던지되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손가락질하지는 않도록 안간힘을 쓸 때, 그런 화자에게서 얼마나 아름답고 먹먹한 이야기가 나오는지 함께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