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개발팀에 보냈던 마지막 탄원서

 
아래의 글은 "나눔기술"에서 "씨앗 포기 선언"을 발표한 다음 내가 썼던 글이다. 지금 다시 봐도 안타깝고 착찹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우선 이번 나눔기술의 씨앗 포기 선언을 듣고, 매우 불쾌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물론 '회사의 사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하실 지 모르지만, 글쎄요... 약 2년 동안 씨앗 농사를 키워 온 저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 정말 말 같지도 않은 말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제가 처음 "씨앗"을 알게 된 것은 구 큰틀(KNTL) 게시판이었습니다. 한참 '씨앗'에 대해서 여러 가지 글들이 올라왔던 그 때, 저는 씨앗 역시 '한베와 같은 그저 그런 언어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질문하는 사람들의 글에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답하시는 박석봉(trpfff)님의 태도를 보고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래서 석봉님의 글 중에 분량이 좀 많다고 생각되는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 글을 읽고, 저는 "씨앗은 예전과 같이 그런 시시콜콜한 언어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고, 씨앗을 한 번 심어 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우선 제가 씨앗을 심기 전에, 내가 씨앗에 대해서 궁금한 점들을 10가지로 정리해서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박석봉님께서 매우 친절하고 자세하게 답변을 해 주셨고, 고맙게도 장영승 대표이사께서도 직접 글을 올려 주셨습니다. 그 글을 여기에 다 실었으면 좋겠지만, 쓸데없이 파일의 크기만 늘어날 것 같아서, 가장 중요한 대목을 올리겠습니다.
10. 나눔기술의 약속...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 한가지가 남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눔기술'의 "약속"입니다. 현재 '씨앗'은 아직 초보 단계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고,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C를 창안한 AT&T에서도 처음 B언어를 개발하고 거기서 C를 개발했다고 들었습니다. 나눔기술의 여러분들께서, 앞으로 어떠한 역경과 고난이 있더라도 '씨앗'을 꽃피우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시겠다는 것을 약속 해 주신다면, 현재 씨앗이 여느 언어에 비해 미약하다 하더라도, 당장 쓰는데 불편하고, 속도가 떨어지고 비 능률적인 코드를 생성하더라도, 좋은 라이브러리가 없고, 또 통합환경이 빈약해도, 그리고 그 기반인 '태극'이 완벽하지 못해도,... 저를 비롯한 '씨앗'을 아끼는 사람들은 계속 관심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나눔 기술이 단지 이윤 추구를 위해서 지금 이 일을 하게 된다면, '씨앗'은 끝끝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스러져 버릴 것입니다. 나눔 기술의 이와 같은 확고한 약속이 있다면, 저는 지금 당장 '씨앗'을 심겠습니다. 처음부터 훌륭한 언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몇번의 새힝 착오를 통해서 언어가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한 알의 씨앗이 큰 나무가 되려면 많은 고난과 정성이 필요하듯이, 지금 '씨앗'이 비록 C언어나 파스칼과 같이 대중화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꽃을 피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태극'이 앞으로 더욱 더 완전해 진다면, 아직도 '태극'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태극'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알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태극' 없이 돌아가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을까?"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태극'의 필요성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태극이 정말 한글을 완벽히 지원해 주고, 그 기반 위에서 '씨앗'으로 만들어 진 풀그림들이 당당히 실행될 때, 그때는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서 AUTOEXEC.BAT화일에 '태극'을 띄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나눔기술의 여러분들, 끝까지 분투해 주십시오.
 
사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위의 대목이었습니다. 위 글에서 말한 것과 같이, 당장은 씨앗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나눔기술의 확고한 약속이 있으면 씨앗을 심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박석봉님은 아래와 같이 답변해주셨습니다. 역시 다른 내용은 생략하고, 제가 위에 올린 글에 대한 답변만을 정리했습니다.(석봉님께 허락 받지 아니하고 글을 옮긴 점은 사과 드립니다.)
일요일날 (16일) 찬홍님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고마움과 함께 긴장감을 느끼면서 글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에는 저희들이 고민했던 부분, 고민하고 있는 부분, 그렇게 하려고 하는 부분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차례 차례 답하겠습니다. ...-중략-...
 
5. 약속에 대해서
'씨앗'은 작지만 하나의 언어입니다. 언어가 생명을 가지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언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저희들이 '씨앗'을 개발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과연 이것에서 금전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닙니다. 만약 처음부터 이윤을 생각했다면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씨앗'을 만들어 오는 과정에는, 따뜻한 격려보다는 부질없는 짓, 쓸 데 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습니다.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작했고, 그러한 신념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들이 '씨앗'을 써 주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과정도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고 험난하다 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찬홍님처럼 '씨앗'을 아끼고, 사랑하고, 또 실제로 사용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저희들은 계속해서 '씨앗'을 키우고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아낌없는 관심과 사랑, 가차없는 질책을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1994.01.18 18:00 박석봉
 
여기에 덧붙여서, 고맙게도 (주)나눔기술의 대표이사이신 장영승 님께서도 아래와 같이 답변을 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나눔기술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장영승이라고 합니다. 늦게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씨앗>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으로 그 동안의 저희의 노력에 대한 보람을 느끼게 해주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 립니다.
저도 이 게시판을 하나하나 꼼꼼히 읽으며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글을 읽으며 때로는 반성도 되고 또한 때로는 힘을 얻고 아마, "이 곳이 바로 씨앗의 싹이 최초로 움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 김찬홍 님의 장문의 질 문중 마지막 <나눔기술의 약속>을 요구하시는 글을 읽고서는 다시금 우리의 각오를 분명하게 해야겠다는 생각과 제가 직접 말씀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불쑥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 김찬홍님 질 문중 기술적인 측면은 물론 이 란을 전담해오신 박석봉님(저의 회사 이사이자 씨앗개발의 총책임자십니다.)이 꼼꼼히 답변 해주실 겁니다.
 
1. 나눔기술이란 회사는?
나눔기술은 이제 4년째 접어드는 직원 서른 명 정도의 조그마한 회사입니다. 주로 대기업과 금융기관에 필요한 기술 자문과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업무를 주로 하고 있는 아직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도 않고 특별히 내세울 장점도 없는 평범한 회사입니다. 사장이 돈이 많은 회사도 아니고 여느 회사처럼 대기업이 출자하여 돈 걱정 없이 지내는 회사도 아닙니다. 어쩌면 커다란 자본 없이 조그마한 기술과 여러분도 가지고 있는 소박한 바램으로 시작했고 아직도 그러한 소박한 바램을 가장 커다란 무기로 생각하며 조금씩 발전해 나가고 있는 아직 '진행 중인' 그런 회사입니다. 이런 회사의 부설 연구소에서 소프트웨어 중에서 가장 개발이 어렵다, 돈이 안된다 하는 프로그램 언어와 컴파일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아마 어려운 과정에서도 우리의 노력이 가장 근본적일 때 가장 커다란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2. 왜 <씨앗>을 개발했는가?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 "<상품화>를 생각하고 <씨앗>을 개발했는가"하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돈 안되는 그런 일을 무엇 하려고 했느냐"는 것이 그 질문의 요지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직 하나, 우리 나눔기술이 가지고 있는 <상품화에 대한 의미>입니다. <상품화>는 기업이 행한 투자에 대하여 어떠한 이익을 보고자 하는 행위라는 측면 이전에 우리가 개발한 것에 대하여 사용자와 책임을 지겠다는 본질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눔기술에서는 처음부터 <씨앗>에대한 상품화를 생각했고 또한 현재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의 의미는 <씨앗>으로 소위 이윤 추구, 돈을 벌겠다는 의미가 아닌 사용자와의 약속을 지키고 희망을 같이 하겠다는 뜻입니다. <씨앗>은 우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살펴보게 하는 매우 중요한 소프트웨어라는 믿음이 저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3. <나눔기술의 약속> 과 <나눔기술과의 약속>
따라서 나눔기술은 여러분과 약속드립니다. 씨앗은 계속 뿌려질 것입니다. 계속 좋은 종자로 개량해 나갈 것이며 씨앗이 효과적으로 싹틀 곳에 성실하게 <씨앗>을 들고 달려갈 것입니다. 싹이 트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저희 힘이 다하는 한 끝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한순간 반짝이다가 없어지는 그러한 많은 경우를 저희 또한 많이 겪어 왔기 때문에 김찬홍님의 배신감의 깊이를 저희 또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믿어 달라!"라고 이야기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냥 지난 3년간 그래 왔듯이 앞으로의 기간도 차분히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단, 여러분들도 이제는 나눔기술과의 약속을 해주셔야 합니다. 저희에게도 무언 가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힘은 바로 여러분들의 의지입니다. 우리 것을 소중히하고 우리 것을 키우겠다는 의지. 바로 이 것이 모여서 씨앗의 싹을 틔우는 힘의 원천이 될 것일 겁니다. 비록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 또한 새로운 것을 남에게 설득시킨다라는 것이 웬만한 확신 가지고는 어려운 일입니다. 저희 나눔기술은 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4. 씨앗을 심으십시오!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이 잡혀 있지 않습니다만 일단 씨앗을 심으시면 여러분에게 걸맞은 비료와 재배 방법을 제공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현재 검토되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상품화를 통하여 보다 정연하고 강한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나타날 것이며 또한 잡지 기고, 공개강좌 형태의 교육 및 홍보 계획과 각 교육기관의 정식 교과과정 진입, 씨앗 관련 동호회 지원, 쉐어웨어 개발자 지원, 씨앗 경진 대회 등 다양한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비록 많은 어려움이 우리에게 닥치겠지만 여러분의 열의와 애정이 뒷받침되어진다면 충분히 수행해 낼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시작은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아마 많은 씨앗이 싹을 틔우지 못하고 썩어 가겠지만 다른 씨앗의 양분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저희의 <씨앗>은 썩어서 다른 씨앗들의 양분이 될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보다 적극적인 여러분의 관심과 동참이 필요합니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두서없는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1993.1.18
나눔기술 장 영 승
 
 
두 편의 글을 보십시오. 얼마나 믿음직스럽습니까? 사실 제가 씨앗을 키워오면서 여러 가지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럴 때면 "에이, 이 따위 씨앗, 집어 치워 버리고 싶다"는 생각, 솔직히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석봉님과 영승님의 이 믿음직스러운 글을 되읽고 힘을 얻었습니다. 비록 씨앗이 부족한 점은 많지만, 이러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충분히 시간과 노력과 정렬을 쏟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나눔기술에서 씨앗 개발을 잠정적으로 중단한다고만 해도 이렇게 흥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씨앗을 포기하다니요! 분명히 박석봉님은,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고 험난하다 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찬홍님처럼 '씨앗'을 아끼고, 사랑하고, 또 실제로 사용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저희들은 계속해서 '씨앗'을 키우고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위의 말은 어디로 가고 씨앗을 포기한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까! 그럼 "그 때는 앞으로 닥쳐올 시련이 두렵지 않았지만, 한 번 그 시련을 닥쳐 보니 도저히 못 이기겠다"고 하시겠습니까? 네. 좋습니다. 그렇다면 "씨앗을 쓰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계속해서 씨앗을 키우고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한 말은 빈말입니까? 정말 말장난에 불과하단 말입니까! 하이텔의 씨앗마을과 나우누리의 씨앗길을 보십시오! 지금 시앗을 이용해서 실재로 프로그램을 짜는 사람이 한 둘인 줄 아십니까! 지금 나눔기술에서 하고 있는 고약한(!) 생각을 모르는 순진 무구한 농사꾼들은, 어찌된 일인지 그전보다 더 씨앗에 대해 정렬을 쏟고 있습니다. 나눔기술이 그토록 개발하겠다고 하던 "음악 음성 단원"은 어떤 한 사용자에 의해서 개발되어, 이미 그 시험판이 자료실에 올려졌습니다! 이 마당에, 뭐라고요? 씨앗을 포기한다고요! 그런 말 같지 않은 소리를, 감히(!) 누구 앞에서 하는 겁니까!
좋습니다. 석봉님이야, 일개(?) 이사이시니까 그렇다 칩시다. 하지만 명색이 대표 이사임께서 아래와 같이 공언하셨습니다. 장영승님이 하신
따라서 나눔기술은 여러분과 약속드립니다. 씨앗은 계속 뿌려질것입니다. 계속 좋은 종자로 개량해 나갈 것이며 씨앗이 효과적으로 싹트일 곳에 성실하게 <씨앗>을 들고 달려갈 것입니다. 싹이 트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저희 힘이 다하는 한 끝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한순간 반짝이다가 없어지는 그러한 많은 경우를 저희 또한 많이 겪어왔기때문에 김찬홍님의 배신감의 깊이를 저희 또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르다! 그렇기때문에 믿어달라!"라고 이야기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냥 지난 3년간 그래왔듯이 앞으로의 기간도 차분히 노력해나가겠습니다.
 
위와 같은 말도 그럼 한낱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말입니까? 男兒一言重千金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말의 권위도 이러할진데, 하나의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의 말은 그럼 어떻겠습니가! 그 말이 가지는 공신력과 권위는 또 어떻겠습니가! 그러한 중요성을 띈 위의 말이, 그럼 빈말이었단 말입니까!
나눔기술이 씨앗을 뿌리는데 어느 정도 수고한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해외 동포에게 씨앗을 전달하는 등 여러 가지의 노력을 했었지요. 하지만 실재로 나눔기술이 심은 씨앗보다, 씨앗을 심어 가꾼 농군들이 퍼뜨린 씨앗이 더 많다는 걸 정녕 모르십니까! "저희 힘이 다하는 한"이라는 말이 지금 출구가 되리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그럼 지금 나눔기술의 힘으로는 씨앗을 더 이상 가꿀 수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위와 같은 호언 장담은 왜 하셨는지요! 정말 제배신감을 깊게 한 건, 한베나 혼잣말과 같은 것들이 아닌, 나눔기술 바로 여러분들이라는 걸 알고나 계십니까! 석봉님과 영승님의 "씨앗을 심으십시오!"라는 말에 속아(!) 씨앗을 심은 내 마음을 갈가리 찢어 놓고 있는 것이, 정녕 여러분들 인줄 모르신 단 말입니까!
처음부터 나눔기술이 말만으로 "우리는 다르다!"고 했다면, 믿어 주지도 않았습니다. 적어도, 씨앗이 한참 탄생되던 그 때에는 나눔기술은 행동으로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농군들은 나눔기술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된 것입니까! 이렇게 나를, 아니 씨앗을 심고 기르는 모든 농군들을 실망시켜도 되는 겁니까!
장영승님께서는 아울러 우리 농군들에게도 약속할 것을 원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제는 나눔기술과의 약속을 해주셔야 합니다. 저희에게도 무언 가의 힘이 필요하기때문입니다. 그 힘은 바로 여러분들의 의지입니다. 우리 것을 소중히하고 우리 것을 키우겠다는 의지. 바로 이 것이 모여서 씨앗의 싹을 틔우는 힘의 원천이 될 것일 겁니다. 비록 쉬운 일이 아닐겁니다.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 또한 새로운 것을 남에게 설득시킨다라는 것이 왠만한 확신 가지고는 어려운 일입니다. 저희 나눔기술은 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희 농군들은 나눔기술과의 약속을 성실히 지켰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씨앗을 뿌리고, 게시판마다 돌아다니며 씨앗을 홍보했고, 남들이 씨앗과 C를 같은 맥락에서 보는 시각을 흔들어 놓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으며, 씨앗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해 내고, 나중에는 씨앗을 심어 기른 농군들이 __자생적으로__ 동호회를 결성하기까지 했습니다.
나눔기술이여! 이래도 우리가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것입니까! 우리의 의지가 부족했습니까! 아니면, 우리들이 씨앗의 초기 시절부터 일구어 놓은 성과 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생각되어지시나 보군요! 최선을 다한다고요? 지금 나눔기술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묻습니다. 감히(!)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지금 할 수 있습니까! 장영승님은,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이 잡혀 있지않습니다만 일단 씨앗을 심으시면 여러분에게 걸맞는 비료와 재배방법을 제공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현재 검토되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상품화를 통하여 보다 정연하고 강한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나타날 것이며 또한 잡지기고,공개강좌형태의 교육 및 홍보계획과 각 교육기관의 정식 교과과정진입, 씨앗관련 동호회지원, 쉐어웨어개발자 지원, 씨앗경진대회등 다양한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비록 많은 어려움이 우리에 게 닥치겠지만 여러분의 열의와 애정이 뒷받침되어진다면 충분히 수행해낼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시작은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위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영승님께서 말씀하신 것 중에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얼마나 됩니까?
"상품화를 통하여 보다 정연하고 강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까? 네. 이건 맞는 말씀입니다. 적어도 시험판에 비해서 정식판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이 좋아진 건 사실입니다.
"잡지 기고"? 네. 봤습니다. 나눔기술이 '마이크로 소프트'에 씨앗에 대한 기사를 냈고, 마이컴에 씨앗 연재를 했었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공개 강좌 형태의 교육 및 홍보 계획"? 글쎄요.. 이건 제로(0)라고 생각되 는군요. 제가 지금까지 씨앗을 접하면서, 나눔기술 주최로 공개 강좌를 연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으니... 혹시 농군들이 모두 잠든 밤에 공개 강좌를 여셨나요? 후후후~ 음.. 홍보라... 잡지에 광고를 내시고, 여러 행사때에 부스를 만드셨지요. 후후~ 그 잡지 광고, 참 좋더군요. "9월 31일에 발매되는 음악 음성 단원"은 지금도 찾아볼 수 없고... 그런데 9월도 31일까지 있었던 가요? 그리고, 나눔기술 부스는 왜 그리 썰렁한가요? 후후후~
아, 그리고, 강좌 이야기가 났으니 하는 말인데요, 나눔기술에서 통신상으로 한 강좌는 장충순님의 '파일 연재'와 채의선님의 '태극 강좌'를 빼고는 무엇이 있었지요? 아마 없을걸요....
"각 교육 기관의 정식 교과과정 진입"? 지금 씨앗을 포기하는 마당에 이런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후후~ 정말 웃음밖에는 안 나오는군요. "씨앗 관련 동호회 지원"? 여기에 대해서라면 저는 누구보다 할 말이 많습니다. 지금 존재하는 나우누리와 하이텔의 동호회... 이거, 나눔기술에서 만들었습니까! 물론 기업 포럼 형태로 해서 만들게 되면 엄청난 자금이 들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는 힘드셨겠지요. 하지만 사용자들이 씨앗 게시판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동호회 신청 발의를 한 사람은 한결같이 한 사람의 농군이엇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요? 또, 동호회가 개설되고 나서, 회원들끼리는 해결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한 답도 매그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 외에 별 다른 지원이 있었습니까?
"쉐어웨어 개발자들을 위한 지원"? 뭐, 아직까지 씨앗으로 만들어진 변변한 공유 무른모 하나 없는 이 마당에, 이 얘기는 접어 두고... "씨앗 경진 대회"? 네. 얼마전에 있엇지요. 무려 2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신청햇고, 그 중에 무려 1/3 이라는 기록적인(!) 인원이 실재로 작품을 제출했더군요. 기가막힌 홍보정책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정말 기가 막히군요!
씨앗을 포기하기 때문에 시상식 하나 변변히 해 주지도 못하고, 참가상? 적어도 출품한 사람들에게는 참가상이 잇어야 하는거 아닐까요? 근데, 협찬사 측의 사정으로 참가상은 없다? (참고로 전 출품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왜? 피곤하니까!)
"비록 많은 어려움이 우리에게 닥치겠지만 여러분의 열의와 애정이 뒷받침 되어진다면 충분히 수행해 낼" 수 있을 거라고요? 그럼 지금 씨앗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씨앗을 기르는 우리 농군들의 열의가 부족햇고 애정이 매말랏기 때문입니까! 정말 열의와 애정을 식게 만든 사람은 누구란 말입니까!
이럴 줄도 모르고, 순진하게 "지금 우리의 시작은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라는 한 마디의 말만 믿고 씨앗을 심고 가꾸어 온, 더구나 씨앗의 정식판과 갖가지 단원묵음들을 구입한 농군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나눔기술... 처음 이 이름을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이 이름만 들으면 소화도 제대로 되지 않고, 울화부터 치미니, 왠 조화일까요?
어쩌면 커다란 자본 없이 조그마한 기술과 여러분도 가지고 있는 소박한 바램으로 시작했고 아직도 그러한 소박한 바램을 가장 커다란 무기로 생각하며 조금씩 발전해나가고 있는 아직 '진행중인' 그런 회사입니다.
 
아직도 나눔기술에 "소박한 바람"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만약 이런 소박한 바램이 일 점 일 획이라도 퇴색했다면, 나눔기술은 성장의 무기가 닳아진 것이고, 따라서 나눔기술은 앞으로 절대로(!) 발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나눔기술에 계신 여러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과 같이 무책임한 나눔기술을 보면, 도저히 이런 '소박한 바람'을 가진 회사라고 보기가 어렵군요. 왜 나눔기술과 씨앗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정말 한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나눔기술! 여러분들은 사용자와의 중요한 약속을 어기고 있습니다.
 
우리 나눔기술이 가지고 있는 <상품화에 대한 의미>입니다. <상품화>는 기업이 행한 투자에 대하여 어떠한 이익을 보고자 하는 행위라는 측면이전에 우리가 개발한 것에 대하여 사용자와 책임을 지겠다라는 본질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나눔기술에서는 처음부터 <씨앗>에대한 상품화를 생각했고 또한 현재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의 의미는 <씨앗>으로 소위 이윤추구, 돈을 벌겠다는 의미가 아닌 사용자와의 약속을 지키고 희망을 같이 하겠다는 뜻입니다. <씨앗>은 우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살펴보게하는 매우 중요한 소프트웨어라는 믿음이 저희에게 있기때문입니다.
 
사용자와의 책임을 지는 것이 이런 태도입니까! 사용자와의 약속을 지켜요? 정말 여러분들이 우리 농군들과의 약속을 성실히 지켰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사용자와 희망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좌절과 절망"을 가져다주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나눔기술의 약속"을 믿고 한 "나눔기술과의 약속"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정렬과 자금을 소비(!)한 줄 아십니까! 정말 이만저만 실망이 아닙니다.
 
나눔기술 여러분!
지금까지 제 글을 읽으시고 마음 상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오죽하면 제가 강건체와 조소를 섞어가면서, 밤잠을 설쳐가며 이런 글을 쓰겠습니까! 만일 제가 씨앗과 나눔기술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없엇다면, 그리고 관심이 없었다면, 이렇게 공을 들여서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게 될 때 상대가 그 사랑을 저버리고 배신하게 된다면, 그 사랑이 미움과 증오로 바귄다는 사실, 잘 알고 계시겠지요?
앞으로 시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곧 보내 드릴 '우리 사용자들의 공식입장'을 잘 읽어보십시오. 여러분이 "포기한다"고 말하면, 그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단지 "여유가 생길 때까지 잠시 개발을 중단하겠다"라고 하면, 여러분은 다시 일어설 출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개발 중단"이라는 말도 큰 충격을 줄 것인데, "개발 포기", 아니 씨앗에 대한 전반적인 "사업 포기"라는 말을 하게 되면, 씨앗과 나눔기술의 약속만을 믿고 씨앗을 심었던 많은 농사꾼들이 얼마나 큰 충격과 실망을 하겠습니까? 방금 전에 함진호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채운이, 그 조그만 꼬마 아이가 바로 여러분이 한 그 "포기"라는 말 때문에 좌절의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공식적 입장을 발표할 때, 제발 "씨앗을 포기한다"는 말은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합니다. 또, 실재로도, 씨앗에 대한 모든 사업을 포기하지 말아 주십시오.
혹시 여러분 중에 포스(
ForthForth
Forth
)라는 언어를 들어본 분 있습니까? 이 언어는 확장성(extensibility)이 너무 좋아서, 번역기의 모든 곳을 사용자가 뜯어고치거나 없는 기능을 더할 수 있습니다. 후후~ 그런데, 씨앗이 포스와 같은 확장성과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여러분의 포기 선언에 맥이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씨앗이 포스입니까! 번역기의 내부 구조를 모르는 사람이, 어찌 씨앗을 쉽사리 고쳐 더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여러분의 그 정렬을 포스에 쏟았더라도, 이런 뼈저림을 맛보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정말 한이 됩니다!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주십시오. '포기'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제시할 공식 입장에 대해서 철저한 해명을 부탁드립니다. 씨앗이 처음 뿌려진 93년 12월의 큰틀 게시판에서 열심히 답변을 쓰던 박석봉님의 그 당찬 글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1996년 1월 21일
매우 늦은 밤에
씨앗의 앞날이 걱정되어 잠 못 이루는
안드레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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