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이 고플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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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영화는 서로 닮은 듯 다르면서, 자신의 영화와 출연하는 배우들이 조금씩 변주하면서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느낌. 예전에 홍상수 영화보고 낮술 마시기 모임이 있었다. 한시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세,네시쯤 영화 이야기를 하며 낮술을 마시는 모임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들은 시집을 가고, 유학을 가고, 제주도로 떠나고 ... 그렇게 모임이 흐지부지 됐다.
이후에는 굳이 홍상수 영화를 챙겨보진 않았는데 이번에 생각나 한낮에 집에서 봤는데 소주 생각이 났다. (이번 영화의 백미는 일식집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술에 취해 나누는 대화) 홍상수 영화가 해외 영화제 나가면 외국인들이 대체 마시기만 하면 사람들이 솔직해지며 자기 마음을 털어놓는저 마법의 '초록병'이 뭐냐며 물었다는데, 홍상수 영화는 진짜 소주를 부르는 영화지.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소주 생각만큼 그때 어울리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명절에 고향에 가면 예전 친구들을 만나는데 예전엔 참 서로 가깝고 생각도 비슷한 친구들이었는데 어느 새 어릴때 친했다는 추억의 공통성 말고는 통하는게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떨땐 그래서 옛친구들이 좋기도 한데 또 어떨 땐 그래서 좀 슬프기도 하다. 예전엔 한 때 가깝던 사람들이 멀어지는게 너무 무섭고 싫었다. 관계의 끈을 놓기 싫어 어거지로 붙잡고 참 많이 속도 끓였다.
내가 스스로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느껴질 때는 '관계'를 흐르는 강물처럼 보게 됐을 때가 아닌가 싶다.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강가에 서서 그저 흘러가는 걸 보고 서 있는 것 같이. 한 때 그토록 자주 만나며 낮술 마시고 영화 이야기를 하던 친구들이 지금은 어쩌다 영화보며 생각나 전화 한통 나누는 사이가 됐듯. 사람들이란 모였다가 다시 흩어졌다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