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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작가의 다정한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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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피라 뮤직 - 무라카미 하루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중.)
다른 분들은 퇴근길에 책을 읽는다고 하셨는데, 육아로 동네 백수가 된 저는 아이가 낮잠을 자거나 아빠와 산책을 하러 나가면 그제야 독서를 합니다. 처음에는 취향대로 소설책을 많이 도전했지만 이젠 깨달았습니다. 단편적인 시간에는 단편적인 글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요.
어째 백수인데 시간은 더 없어서 아무래도 짧으면 40분, 길면 두어 시간. 책 읽는 중에도 자꾸만 떠오르는 집안일! 그렇게 조각내어 소설을 읽다 보면 집중이 안된다고 할까요.
수필, 산문은 아무 곳을 아무 때나 펼쳐도 역시 아무렇게나 잘 읽혀서 요새 e북으로 여러 권 받아두고 내키는 대로 읽습니다. (스크린타임 늘어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중 요즘 굉장히 좋았던 하루키 씨의 ‘긴피라 뮤직’ 소개합니다.
이 글이 실린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라는 책은 하루키 씨가 잡지 앙앙에 연재한 산문을 묶어 출간한 것으로, 읽다 보면 ‘어어, 하루키 씨 이거 이거 되게 막 쓴 것 같은데...?’ 싶다가도, 실상은 그가 견문이 어마어마한... 천부적인 글쟁이인 탓에 결국 탄식과 공감의 내적 박수를 치며 백기를 들게 되더라고요.
이 긴피라 뮤직만 해도, 그가 우엉볶음 간장조림(긴피라)을 만들려고 주방에 서서 닐 영이란 뮤지션의 신보를 틀어놨다가 그 분위기와 메뉴와 음악이 너무 잘 어울려 가슴이 뜨거워졌다는 감상으로 시작해요. 그리고 자신의 음악 취향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는데, 복잡한 락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미국의 심플한 락은 참 좋아한다며 드라이브할 때 선호하는 음악 두곡을 소개하더니 노동요의 중요성을 다시 역설한 다음, 양배추 롤을 만들 때는 어떤 음악이 좋을지를 추천해줍니다. 글은 끝내 버섯 우동엔 에릭 클랩튼이, 돈가스엔 마빈 게이가 제격이라며 끝이 나는데 이건 완전 의식의 흐름 따라 요리조리 흘러가는 잡담이란 말이죠. 이렇게 요약해서 쓰면서도 웃음이 나네요.
저는 얕고 대중적인 취향 탓에 이 글에 언급된 뮤지션과 음악들을 섭렵도 이해도하진 못하는데, ‘음악은 시추에이션이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해서-’라는 하루키 씨의 말에는 깊이 공감했습니다. 음악은 그것과 어울리는 어떤 장면을 불러내고 극대화하는 힘이 있다는 것에요.
저도 오늘은 우동까진 아니고 잔치국수 만들며 에릭 클랩튼 한번 틀어놔 보겠습니다. 그러면서 김밥 말 때 어울릴 음악은 뭐가 있을까, 남편이 좋아하는 미트볼을 만들 때는? 하는 즐거운 공상도 해보려고 합니다. 혹시... 추천해주신다면 기꺼이 틀어놓고 김밥과 미트볼을 만들어 인증샷을 올리겠습니다. 😉
 
잔치국수를 만들며 틀어놓을 음악, 에릭 클랩튼 <Change the world>. 우동을 위한 곡 제목은 책에 나와있지 않아서 그의 음악중 낯이 익은 곡으로 골랐습니다. 여기에 두고 이만 총총.
하루키 씨가 유행시킨 소확행이란 단어가 이 책의 다른 산문에서 등장합니다.
하도 친근한 어투의 책이라 저도 하루키 씨라고 부르게 되네요. 홍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