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시게" - 노가다 아저씨

내가 원래 말랑말랑 멜로, 간질간질한 로맨스를 좋아하지만, 억수씨의 만화들에는 청춘이랑 로맨스가 함께 있다. 이 두 단어가 같이 있는 작품이라니? 되려 두근대면서 안 보기가 힘들 것이다. (같은 이유로 아다치 미츠루의 러프, H2도 빼놓을 수 없다...)

작가의 이전 작품인 <오늘의 낭만부>에서는 세상과 시간에 보란듯이 반항하는 한심한 (초고학번!) 대학생 혁집이 등장했고, 나는 이 못나기도 모나기도 한 고집쟁이 캐릭터에 정을 쏟았다. 그렇지만 작가는 혁집으로 대표되는 삶의 로맨스, 그러니까 '낭만'으로 현실을 이겨내거나 덧씌우는 데에 실패했고 (잦은 지각과 연재중단으로) 끝맺음을 맺는다.

HO!는 2ch에 올라왔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만화다. 이 사연이 만화가 되기 전에 인터넷에서 봤었고, 연재가 될 때는 매주 한 편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실화가 주는 현실성 때문인지 작가의 성장 때문인지 이 만화 속에서 작가는 낭만과 삶의 문제를 조화시켜 완결성 있는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무엇이 다를까 하니 아마도 '성장'이 아닐까 한다.

<오늘의 낭만부>의 주인공 혁집도, <HO!>의 원이도 삶의 시간 속에서 계속해서 실수하고 보는 사람 손을 찌부시키고 귀가 빨개지게 만든다. 그런데 원이는 혁집과 다르다. 양심의 모서리에 찔려 정신을 차리고, 상처주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고, 그러한 경험들로 '변한다'. 그래서인지 노가다판 범석 아저씨의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시게"라는 말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는다.

결국 <HO!> 안에서 삶이란 오늘의 낭만으로 덮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직시함으로서 작가 역시도 지난 작품에서보다 성장한다. 반대로 낭만이란 것을, 밥숟가락의 무게가 3대 운동처럼 느껴질 만큼 힘들고, 쥐구멍에 숨고 싶을만큼 부끄러운 시간에도,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라는 명제를 통해 그려내면서 삶과 낭만에 대해 진실하게 이야기하는 데에도 성공한다.

사실은 호!의 해맑은 미소 뒤에 꽃피는 해바라기를 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은 읽을만 하다고 생각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원이가, 그리고 한 작품을 두고 이만치 키가 커버린 작가가 대견한 느낌이 들어 더 애정이 생긴다. 다음 휴가때는 부디 만화방에서 <HO!>를 읽으며 군것질을 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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