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예수 그리스도 :: 아하스페르츠의 단상

 
예전 '출애굽기'가 일본어에서 비롯된 국적불명의 단어임을 지적하고, 이후 성서의 '엑소더스'(EXODUS, 가톨릭에서는 '탈출기'로 번역됨)라는 성서의 챕터 제목 자체를 인용함에 있어서도 줄곧 '출애급기'를 고집하고 있다.(* '호렙 산의 UFO/모세를 속인 여호와의 절묘한 트릭' 참조) 교계에서 매양 사용되는 '그리스도'란 단어 역시 어원이 조금 의심스러웠는데 지금 찾아보니 이 또한 일본어 쿠리스도(クリスト)에서 비롯된 국적불명의 단어였다. 크리스트(Christ)라고 하는 예수에의 별칭이 우리나라에서는 국적불명의 이상한 낱말로써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알아보니 일본에서 쿠리스도라는 단어가 사용된지는 꽤 오래로 분로쿠노 역(文祿の役:임진왜란) 이전까지도 올라간다 한다. 하긴 임진왜란 때의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유럽의 동방선교교단 예수회(The Society of Jesus)가 야소회(耶蘇會)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상륙한 것이 1549년인 점을 감안하면 그 연혁이 깊을만도 하다. 하지만 지금 일본에서 쿠리스도란 단어는 사전에만 살아 있는 사어(死語)가 됐고 아주 늙은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키리스도(キリスト)라는 단어를 쓴다고 한다.(표준어 또한 キリスト이다) 그와 같은 사어가 유독 한국에서만 국적불명의 단어로써 버젓히, 그리고 빈번히 사용돼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초기 기독교 선각자들이 일본 신학자들, 즉 쯔다 센(1837-1908)이나 우치무라 간죠(1861-1930) 등의 영향을 받은 바도 크겠지만(* '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 IV' 참조) 워낙에 빨리 성장했던 한국 기독교 시장에 무분별하게 번역돼 수입된 일본 성서의 영향 때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구한말의 조선에 아펜셀러와 언더우드가 감리교와 장로교를 전파하기 이전, 이미 한국에는 일본에서 출간된 '현토 한한(漢韓) 신약성서'(한문에 한국어 토를 단 성서)가 들어와 있었다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수정의 신약성서 마태전(마태복음)
임오군란 이후 수신사 박영효의 수행원으로 갔던 이수정은 1883년 동경에서 프로테스탄트에 입교해 세례를 받은 후 그 이듬해 요코하마에서 '현토 한한 신약성서'와 '신약성서 마태전'이라는 한문에 이두식 토를 단 성서를 간행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조선 사회에 영향을 끼친 흔적까지는 찾아보기 힘든 터, 전래 초기 조선 기독교의 성서는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한 묶음 들고 온 '신약성서 마가전'이 될 터인데,(혹은 '신약성서 마가전 언해') 그 역시 요코하마에서 미국성서공회를 통해 간행된 성서였다. 따라서 영어 고유명사의 번역은 당연히 일본식 발음 일색이었고, 그 오래된 일본의 잔재가 지금까지 남아 판을 치고 있는 셈이다.(내가 제목에 그 잘못된 음차를 빌려온 것도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이수정의 신약성서 마가전(마가복음)
1884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간행된 성서로 마찬가지로 한문에 이두식 토가 달려 있다.
이상을 보자면 잡신 숭배 종교인 신도(神道)의 일본에도 기독교 인구가 꽤 있을 듯 여겨지지만 경이롭게도 채 1%가 되지 않는다. 이는 로마 가톨릭, 개신교, 기타 정교회 등을 모두 포함한 수치라서 더욱 흥미로운데, 워낙에 그 비율이 작아 1% 미만이라 집계될 뿐 어떤 통계에서는 0.5% 미만으로도 표시되기도 한다. 이는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는 중국이나 이슬람의 중동국가들보다도 적은 수치이니 그 많던 일본의 기독교 신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유명한 후미에(踏み繪: 밟는 그림)
일본의 에도 막부는 초기에는 기독교에 대해 유화적이었으나 1637년 기독교도 농민 반란인 시마바라의 난이 일어나자 이후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다. 후미에는 기독교도들을 색출하기 위한 것으로 이같은 동판이나 그림을 밟고 지나간 자는 살았고 그러지 못한 자들은 모두 천당으로 갔다.(개중에는 지옥으로 간 자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기독교 최초의 세례자로 알려진 이수정 역시 일본 쯔유쯔기죠(露月町) 교회에서 일본인 목사 야스가와에게 세례를 받았다. 앞에서도 말했듯 그는 수신사로 갔던 박영효의 수행원이었는데, 이후 박영효도 그의 영향을 받았는지 1888년 3월 고종에게 상소를 올려 천주교와 예수교에의 개방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 같은 종교를 믿는 구미 여러 나라가 세계의 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이 근거였다.(일본 외교문서 21권에 그 내용이 수록돼 있는데, 반면 이수정은 지나친 친일 행위와 사상이 문제가 돼 1885년 5월 귀국과 더불어 체포돼 처형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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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6월 동경에서 개최된 전국 기독자신도대회에서의 이수정(아래 중앙의 흰 옷 입은 인물로 그 왼쪽이 쯔다 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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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이 세례를 받은 쯔유쯔기죠 교회는 1923년 관동대지진과 연속된 화재로 소실되고 1936년 지금의 자리에 새로 지어졌다. 도쿄시 미나토쿠구 지하철 도라노몽 역 5분 거리에 위치하며 지금은 시바 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후 조선의 기독교 선교를 이끈 사람은 미국인 아펜셀러와 언더우드로, 그들은 비교적 편안한 환경 속에서 자유로운 선교 활동을 이어갔다. 그것은 고종을 비롯한 당대의 권신들이 미국에 거는 간절한 기대에 편승한 결과로 볼 수 있겠다.(어쩌면 초강국 미국이 조선을 구원해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
사실 미국은 카쓰라 테프트 밀약 등을 통해 조선을 저버렸지만 그럼에도 줄곧 미국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치 않았던 조선이었다. 꼭 그래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후로도 조선에서의 기독교 신장세는 가파랐던 바, 1907년 1월의 '런던 타임즈' 기사는 그해 벽두 미국인 블레어 목사(한국명 배위양)가 개최한 평양부흥회의 열기를 놀라움을 담아 실었다. 이같은 미국에의 기대는 광복 이후로도 이어져 대한민국 건국 초기 기독교 선교의 슬로건은 '잘 사는 나라 미국이 믿는 종교를 우리도 믿읍시다(그래서 우리도 잘 살아봅시다)'였고, 미군정 이후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에 오른 것도 미국에의 기대에 편승한 결과라 볼 수 있을 터였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하에서는 대부분의 기독교회가 그들의 독재에 방조함거나 적어도 침묵함으로써 편안하게 그 세를 확장해가며 공생공존할 수 있었는데, 이후 김영삼과 이명박이라는 개신교 장로 출신의 대통령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 중 이명박은 서울시장 시절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연합기도회에 참석해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비상식적인 봉헌문을 낭독하기도 한 이력의 소유자였다.(서울시가 네 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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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으로 재직하던 2010년 3월에는 이른바 국가조찬기도회라는 자리에서 이같이 해괴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대통령을 무릎 꿇리는 목사의 힘이 가히 놀랍다. <한겨레>자료
이같은 비정상적 성장은 세계에서 유독 한국만이 보인 특이한 현상들이었으니, 앞에서 언급했던 (이미 쇠망한) 일본 기독교나 급속한 쇠락의 길을 걷는 서구 크리스트 집단에 비하자면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들은 오랜 미몽(迷夢)에서 깨어났으나 한국은 아직도 혼돈의 꿈 속을 헤메고 있는 것이다.(개신교는 967만, 가톨릭은 389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2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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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홀과 디스코 클럽으로 변한 서구의 성당과 교회 모습으로, 유럽과 미국에서는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러한 가운데 작년 12월 본 블로그에 올린 글이 한 기독교 집단에 의해 고발되어 임시조치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성서와 UFO' 카테고리의 글이 문제돼서가 아니라 '미학(美學)' 카테고리에 실은 글 중의 말미에 작금의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성폭행 성직자를 지목해 비판한 것이 지적됐다.(기독교 교회 2곳과 천주교 교단 1곳의 성직자를 실명 거론했는데, 그중의 한 교회로부터 고발장이 접수된 모양이다) 티스토리 운영자인 '다음'에서는 나름대로 구제 기회를 주어 한 달 내에 복원 신청을 하라는데, 나로서는 다른 할 말이 없기에 신청하고 말 것도 없을 듯하다.
분이 채 가시지 않을 즈음, 다시 보도 하나를 접하게 되었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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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 절반이 목회 중.... 교회·교단은 묵인'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jtbc의 탐사플러스
[jtbc 뉴스 앵커]
지난해 말에 정부는 아동 청소년 성범죄자 131명을 관련 기관에서 퇴출했습니다. 학교나 학원으로부터 경비업무나 게임시설까지,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직업들이 대부분 해당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성역인 곳이 있습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저희 탐사플러스 취재진이 2005년부터 작년까지 아동 청소년 성범죄로 처벌을 받은 목사를 조사해봤더니 모두 79명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이가운데 21명은 여전히 '성직자'를 자임하면서 목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재 수감 중이거나 은퇴한 목사를 제외하면, 절반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이들에게 피해를 입었던 아이들은 8살 신도부터, 가정 폭력을 피해 온 초등학생, 그리고 자신의 친딸도 있습니다.
박병현 기자입니다.
[jtbc 기자]
지난 6일 오전, 경기도 성남의 한 교회입니다.
지하 1층 교육실에서 초등학생들의 성경공부가 한창입니다.
재미있는 게임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교회 '교육목사' 임모 씨입니다.
그런데 임 씨는 지난 2013년 1월, 아동 강제추행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임 씨는 한 교회 캠프에서 8세 여아에게 '초콜릿을 주겠다'고 지하 기도실로 유인해 문을 잠그고 강제 추행했습니다.
임 씨는 지난해 7월부터 현재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임모 씨/경기 성남시 00교회 목사 : (사건 당시) 교단에 이제 보고를 드렸던 거고…그때 담당하시는 목사님께서도 '젊은데' 이제…]
취재가 들어간 후 지난달 교회 측도 해당 사실을 파악했지만, 임 씨는 지금도 교육목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안산의 한 교회.
추수감사절 예배를 앞두고 백발의 목사가 직접 신도를 맞이합니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환하게 맞습니다.
1920년 세워진 이 교회에서, 20년째 담임 목사를 맡고 있는 정모 씨.
그런데 정 씨가 이 교회를 비웠던 때가 있습니다.
지난 2014년, 대법원이 정 씨에게 징역 8월 판결을 확정지었던 때입니다.
2012년 정 씨는, 교회 체육대회를 준비하던 13살 여중생 신도 2명을 추행했습니다.
수고비를 주겠다며 사무실로 불러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정 씨는 복역 후 다시 담임목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모 씨/경기도 안산시 00교회 목사 : 사과도 했고 뭐랄까 의도적으로 한 것도 아닌데…원만히 뭐 다 끝난 거고 해결된 거죠.]
성추행 사건 이후 바뀐 것은 피해자들이 교회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교단도 사실상 묵인한 셈입니다.
문제는 이 교회, 이 교단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광주광역시의 또 다른 교회입니다.
이곳 담임목사 민모 씨는 지난 2016년 11월,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전도하던 고등학생으로부터 지적장애를 가진 친구 2명을 소개 받은 뒤, 노래방과 자신의 차에서 강제로 추행한 혐의입니다.
[민모 씨/광주광역시 00교회 목사 : 우리 앞에 온 선생님들은 성에 자유로워요? (모든 사람이 성에 자유롭다고 해서 범죄를 저지르진 않죠.) 범죄를 아마 한 번 했다고 해서 계속해서 저지른다는 데이터가 있어요?]
실제 정 씨와 임 씨, 그리고 민 씨 모두 교단 복귀에 아무 제약이 없었습니다.
보도에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성추행 사건 이후 바뀐 것은 피해자들이 교회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교단도 사실상 묵인한 셈입니다."
그런데 과연 교회와 교단만이 묵인했을까? 그들의 신 예수 크리스트도 이를 묵인한 것은 아닐까?
나는 교회와 목회에서 멀어진 사람이므로 사실상 예수와 하나님을 거론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신의 징벌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jtbc에서 보도한 내용이다.
"다윗도 밧세바를 범했을 때 돌이켜서 용서를 받았다. 회개를 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셨는데 네가 나를 정죄할 수 없다"
저들의 후안무치함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목회 독재 속에 헌금을 남용하고 십일조를 강요하며, 헌금 액수에 따른 교인 차별은 이미 교회에서는 일상화된 일이다. 게다가 목회자의 직분이 계급화되고 교회 세습이 횡횡함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예수 크리스트께서는 여전히 침묵하고 계신다.
오래 전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체제에 불응했던 한 젊은 시인은 체벌의 고통 속에 이렇게 울부짖었다.
"주여! 재림하시려거든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땅에 내려오소서!"
또 유람선을 타고 해외를 여행하던 어느 유명 목사는 바다의 풍광에 만끽해 이렇게 너덜거렸다.
"봐! 돈이 곧 하나님이야."
그때 없던 신의 응답과 징벌이 지금 새삼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일화는 신의 부재(不在)를 의심하는 계기가 되었고, 1996년 11월의 경험(* '들어가기 - 나의 UFO 목격담' 참조)과 나름대로 배운 신학을 밑천으로 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신은 부재하지만 성서는 존재하기에, 아울러 성서에 기록된 그 모든 것을 사실로 여기기에 그에 대한 해석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더불어 말하고 싶은 것은, 성서에 기록된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곧 우리나라에서도 하나님 스스로 교회의 촛대를 거두는 일이 생겨나리라 믿는 바이니, 머잖아 우리나라에도 기독 신앙의 동공화(洞空化)가 이루어지라 확신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의 임재는 하나님 스스로도 무의미하다 여길 것이며, 신이 떠난 교회에서 인간이 머무는 것 역시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기에.....
  • 예수 재림을 희화한 만화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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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