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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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 전에 <킬링 이브>와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How I Met Your Mother)>를 소개했던 걸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시즌 3에 들어서면서 매력을 모두 잃은 <킬링 이브>와 억지스럽고 약간은 불쾌하기까지 했던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에 실망하고 있던 찰나에 왓챠에서 엄청난 시리즈물을 수입해버렸습니다. - 바로 <키딩>!!!! <이터널 선샤인>에 복잡한 낭만과 향수를 품고 계셨던 분들이라면 눈이 돌아갈(?) 조합, 미셸 공드리 감독 / 짐 캐리 주연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볼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 차가운 마음으로 조금 더 자세히 소개를 해보겠습니다.

주인공 '제프'(짐 캐리 분)와 그의 가족(여동생 '디어드러', 아버지 '세바스찬')은 아동용 TV 프로그램에서 인형극을 해서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쇼의 프런트맨인 제프(예명은 'Mr.Pickles')에게 크나큰 불행이 찾아옵니다 - 아내가 운전하고 있던 차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쌍둥이 아들 두 명 중 한 명이 죽은 것입니다. 끔찍하게 비극적인 일을 당하고도 제프는 그 슬픔을 제대로 느끼고 표현할 겨를이 없이 아이들 앞에서 웃는 얼굴로 행복한 이야기만 해야했고, 비극을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멀어져가는 가족을 붙잡는 데에 전념해야 했습니다. "당신(의 프로그램)이 절 살렸어요." 전 세계의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제프에게 이런 말을 곧잘 하지만, 자신의 아들은 살릴 수 없었던 제프. 결국 한계에 부딪칩니다. "모든 고통엔 이름이 붙여져야 해요." "프로그램에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해야겠어요." 이제 제프는 아이들에게 진실을 보여주고 싶고, 슬픔과 분노를 제대로 느끼고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경영권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와 인형 제작자이자 동업자인 여동생은 당연히 사업과 아이들을 위해서 제프를 말리고 제프와 갈등을 빚습니다. Mr.Pickles의 쇼와 제프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수면의 과학>, <이터널 선샤인>, <무드 인디고>에서 보였던 미셸 공드리의 초현실적, 전위적인 영화적 기법을 기대하시는 분들이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지만, 주제 전달력은 오히려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영화와 TV시리즈는 완전히 다른 매체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하겠지만요. 이 시리즈가 말하고 있는 것은 분노나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느끼는 것은 권리를 넘은 의무라는 것이에요. 이건 사실 상당수의 SF에서 다뤄진 주제이기도 하죠. '소마'라는 (마)약을 수시로 먹으며 말초적인 행복에 중독된 <오래된 미래> 속 사회, 후계자에게 좋은 기억만 전달하려다가 끔찍한 결과를 낳은 경험이 있는 <더 기버>의 '기억전달자', 개인의 감정을 통제하는 <이퀼리브리엄>, <이퀄스> 속 사회가 사실상 비슷한 맥락의 주제를 적어도 조금씩은 다루고 있었습니다. 한편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웃어야하는 아이러니의 아름다움은, 광대나 엔터테이너가 주인공인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키딩>에서는 그런 '슬프다 못해 아름다운' 아이러니에 처한 제프가 내적으로 무너져내려가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비극은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느끼고 제대로 소화하고 제대로 표현하고 제대로 위로받아야한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척'을 하려다가 결국 나락으로 무너져버리고 마는 제프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아이들에게 TV 모니터를 통해 가르치고 있었던 것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던가를 자각합니다. ('Kidding'은 그래서 Mr.Pickles의 '말장난Kidding'과 제프의 '육아Kid-ding'라는 중의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 재치 넘치는 제목이 됩니다.) 작년에 개봉해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조커>에서 '해피'(조커)의 거울에는 "Put on a 'HAPPY' face"가 쓰여 있었죠. 그 또한 조커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자주 했던 말이었던 걸 생각하면, 여기에 포함시켜서 같이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무신경하게 어디에나 노란 스마일 스티커를 붙여주는 게 진짜 사랑, 진짜 교육의 이상적인 모습은 아닐 거예요. 우리는 평소에 부정적인 감정들을 얼마나 자유롭고 투명하게 느끼고, 얼마나 잘 소화하고 위로받고 위로하고 살고 있을까요? 그런 우리가 자식들(저는 아직 없지만!)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줄 수 있는 걸까요?

주요 소재가 인형극이다 보니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이야기들, 귀여운 노래(그러면서도 가사는 또 상당히 깊고 무겁습니다.)부터 재밌는 말장난까지, 큰 주제 뿐 아니라 작은 디테일들을 가지고도 같이 이야기할 만한 게 많은 작품이에요. 미셸 공드리의 영화들을 보신 분들이라면 인형들과 세트장을 보고 <수면의 과학>을, 시작 씬에 나오는 스탑모션 애니메이션을 보고 <무드 인디고>를 떠올리실 수도 있겠습니다. <이터널 선샤인>의 팬이시라면, 중간 중간 'Nice'하기만 한 착한사람 콤플렉스 제프를 볼 때마다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분)이 조엘(짐 캐리 분)에게 기차 안에서 했던 "'Nice'? I don't want to be it, and I don't want anybody to be it at me!" 같은 대사가 귀에 울릴 거고, 또 제프가 아이스링크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신에서는 "Slidy, slidy!"/"Honeymoon on Ice?" 빙판에서 이루어졌던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데이트가 떠오르실 거예요.

시즌 2에서는 Ariana Grande와 Tyler, the Creator가 까메오 출연을 하는데, 이 둘의 팬이시라면 그 장면들을 기다리면서 보실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