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해설 영화가 4차원을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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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Apr 30, 2019 07:0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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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안인 친구를 만나는 날. 남자끼리 영화를 보잔다. 멜로 영화라도 보자 했으면 끝내 거절했겠지만 이 친구가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우리 4DX(포디엑스) 영화 볼래?"
4DX란 4차원으로 경험한다는 말로, 시각과 청각 뿐만 아니라 영화의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 특수 효과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미 4DX 영화를 본 지인들을 통해서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진짜 4DX 영화를 느껴본 적은 없었으니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극장에 들어가서 의자에 앉았을 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 다른 의자보다 조금 더 튼튼하게 생겼고,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난간이 있었고,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등받이는 목과 머리까지 받혀주었다. 그리고 머리 양쪽에 무언가의 장치가 있다는 정도가 다른 점이었다.
영화 상영 10분 전, 늘 그랬듯이 광고가 흐른다. 화면 해설 영화를 보러 갔을 때도 광고에는 화면 해설이 없기 때문에 아쉬웠는데 어차피 지금 보려는 영화는 화면 해설이 없으니 무덤덤하게 영화 상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의자가 심상치 않게 진동한다. 화면에는 우주선이 출발하는 준비를 하고 있다. 카운트 다운이 울리고 곧 이어서 우주선의 엔진 음이 높아진다. 의자의 진동도 따라서 강해진다. 어느 순간 우주선은 경쾌한 추진음을 내며 앞으로 날아간다. 동시에 의자는 마치 관성의 힘을 받는 것처럼 뒤로 젅혀진다. 어찌나 깜짝 놀랐던지 "헉!"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우주선은 지구를 선회한다. 의자도 그 각도에 따라 상하좌우로 움직인다. 드디어 우주선이 지구의 대기권으로 들어오고 어느 도시의 하늘 위를 날고 있다. 뒤에서는 악마의 군단이 미사일을 쏘면서 추격해 온다.
온 몸을 압도하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뒤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모양이다. 잠시 후 왼쪽 귓전을 무언가 스치듯 지나가는 것처럼 바람이 인다. 미사일이 내 왼쪽으로 아슬아슬하게 비껴간다. 우주선은 기묘하게 각도와 방향을 조절하며 이 위기 상황을 빠져나간다.
그런데, 저 앞에 커다란 분수가 물을 쏟아내고 있다. 도망칠 수 있는 길은 오직 저 분수를 통과하는 것 뿐이다. 어 그런데, 갑자기 얼굴로 작은 물방울들이 흩뿌려진다. 아이구 깜짝이야! 열심히 도망가던 우주선은 아군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우리 군의 미사일이 뒤쫒는 적을 맞춘다. 폭발과 함께 목덜미 뒤로 뜨거운 바람이 훅 지나간다. 순간 작열하는 듯한 후폭풍을 느낀다.
아직 영화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온 몸과 마음은 새로운 경험들로 탄성을 지르고 있다. 이것이 4차원의 경험이다.
곧이어 4D 기술을 이용한 광고가 상영된다. 기울어진 경사면을 힘차게 올라가는 차를 따라 의자도 함께 기울어지고,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마치 안마 의자처럼 등 쪽에서 무언가 내 등을 툭툭 두드린다. 이렇게 온 몸으로 광고를 느껴보기는 처음이다.
본 영화가 시작된다. 장면 하나하나마다 그에 맞는 입체 효과가 연출된다. 앞에서 어느 정도 적응을 해서인지 이제는 놀라거나 당황스럽기 보다 하나하나의 효과가 영화에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감상하는 게 재밌어진다. 빠른 격투 장면에서도 누가 공격을 하고 누가 얻어 맞고 있는지를 훨씬 실감나게 알 수 있다. 주인공 소년이 독거미에게 물리는 음침한 지하 공간의 분위기, 평행우주에 존재하는 스파이더맨과 악당들의 사투, 질주하는 자동차와 폭발하는 물체들, 그리고 꽃향기 가득한 평화로운 장면들. 이런 것들 모두 하나하나 입체 효과를 만들어낸다. 만일 이 영화를 그냥 관람했다면 화면 해설도 없고 음성도 영어이기 때문에 거의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졸다가 왔을 테지만, 4D 효과와 함께 영화를 관람하니 그 현장감과 감동이 몇 배로 증폭된다.
예전보다 지금은 화면 해설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런데 만약 화면 해설 영화가 4DX로 상영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질 좋은 화면 해설이라도 영화가 주는 그 '순간적인' 경험들은 다 담아내지 못한다. 특히 빨리 전개되는 액션 영화일 수록 더 그렇다.
'화면 해설'이 없던 시절, 우리는 영화의 내용에 목말라했었다. 이제 영화의 '경험'에 목말라 하는 우리들에게 '4DX'는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며, 시각장애인들의 영화 관람을 몇 배는 즐겁게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노력과 예산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 시각장애인들이 '4DX' 영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경험할 날이 다가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