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루터에 대한 생각

 
영상 잘 보았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무엇보다도 개신교 편항적으로 기술되기 쉬운 소위 '종교 개혁' 사건을 최대한 중립적인 위치에서 기술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가톨릭 신자 입장에서 늘 마음이 아픈 이야기는 동서 교회의 대 분열과 바로 이 '종교 개혁' 사건입니다. 하느님의 생각이 아니라 철저히 사람들의 생각으로 움직여진, 그래서 하느님이 보시기에 가장 마음 아프셨을 사건이 이런 '분열'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지 않는 분들(그리고 개신교 형제님들)은 '종교 개혁'은 종교의 교리 논쟁이 핵심이고 거기에서만 촉발되었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저는 결국 타락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정치적 충돌'이 '종교 개혁'이라는 말 속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에서 이 부분을 잘 짚어주셨기 때문에 정말 정말 감사했습니다.
기독교(이 말은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를 모두 아우르는 말입니다. 흔히 개신교만 기독교라고 오해하시는 분이 있어서 적습니다.) 신자가 아닌 분들에게 있어서 '그깟 빵과 포도주의 의미 같은 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 모두 그 '빵과 포도주'가 지탱해 온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는 내 몸의 상징이다.", "이는 내 피의 상징이다."라 하지 않으시고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라 하셨기 때문에, 개신교를 제외한 기독교에서는 초세기부터 "빵과 포도주는 사제의 축성으로 그리스도의 실제의 몸과 피가 된다"는 "실체변화"(라 transsubstantiatio)를 믿어왔습니다.(한국 개신교에서는 이를 '화체설'이라 오역하고 폄훼하는데 이는 언어도단입니다. 실체와 우유에 대한 이해가 없는 '화체설'은 '면죄부'와 더불어 다분히 개신교 편향적인 번역이며, 개신교를 제외한 기독교의 교리에서 한참 벗어난 내용입니다) 9세기와 12세기에 이러한 교리에 대한 논쟁이 있었으나 교회의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실체 변화"를 곤고하게 선언했습니다. 사실 동방정교회에서 '실체변화'를 믿고 성사(개신교에서는 '성례전이라고 부릅니다)로 거행한다는 것은 가톨릭 교회가 성경에 없는 교리를 더했거나 고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됩니다.
사실 교황과 교황청이 성경에 없는 내용을 가르친다는 말은 사실을 왜곡한 점이 있습니다. 개신교를 제외한 기독교에서는 오래전부터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성경에 다 기록된 것은 아니다'는 교리를 믿어왔습니다. 이것을 교회의 살아있는 "거룩한 전통"(성전, 聖傳, 라 Traditio, 영 Tradition)이라고 하며, 교회에서 열린 역대 공의회의 결정들이 대표적인 성전입니다. 성전이 단순한 교회의 전통과 다른 점은 사도로부터 직접 전해온 가르침이라는 것이며, 절대로 변경되거나 추가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일에 미사(예배)를 드리는 것, 12월 25일을 성탄으로 지내는 것, 춘분 후 보름 다음의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내는 것 등의 일반적인 사항 뿐만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와 실체에 대한 '삼위일체'라는 말 역시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는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에서 온 것입니다. 그리고 마르틴 루터가 그로록 주장했던 "오직 성경"(라 sola Scriptura) 역시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말입니다. 더욱이 성경에는 '무엇이 성경인지'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지금 한 권으로 되어 있는 성경은 오랜 세월에 걸쳐 교회가 수백 개의 문서들 중 걸러낸 것으로서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에 따라 공의회에서 성경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렇듯 루터는 "교황과 교황청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는 것을 가르친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청빈, 정결, 순명을 하느님께 서원한 수사였으며 하느님의 성사를 거행할 직무를 받은 사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박식한 루터는 교회가 가르쳤을 "살아있는 거룩탄 전통"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가톨릭 교회의 진정한 개혁을 바라고 일을 시작했음이 분명합니다. 실제로 현대에 와서 가톨릭과 루터 교회는 '이신칭의'에 대해서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루터가 말하려고 했던 그 이신칭의는 결국 가톨릭의 그 가르침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말한 '빵과 포도주'에 대한 입장도 가톨릭의 '실체변화'와는 조금은 다른 입장이지만, 적어도 위클리프로부터 츠빙글리, 칼벵으로 내려오는 '상징설'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사람의 탐욕'이 들어오면서 소위 종교 개혁은 피비린내 나는 '종교 분열'로 변질되고 맙니다. 교황청의 헤게모니를 가져오고 싶었던 사람들은 루터의 그 열정에 불을 지핍니다. 그리고 루터는 결국 자신이 맹세했던 순명을 깨뜨리고 자신의 장상인 교황의 교사를 불태우기까지 합니다. 또한 사제가 되었을 때 하느님께 드렸던 독신의 서원도 깨뜨리고 결혼을 합니다. 루터는 이제 정말 "새로운 교회"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성경 자유 해석주의"에 의해 셀 수 없는 분파로 갈라졌고 지금도 그 분열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 다음 영상에서 다루어주시겠지만 루터는 라틴어로 되어 있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자신이 주창한 '오직 믿음'(라 sola Fide)이라는 주장에 반한다 하여 '야고보 서간'을 '지푸라기 편지'라며 신약 성경에서 빼려고까지 했습니다("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 2,26) 또한 초대 교회가 사용했던 70인역 성경을 버리고 유대교가 인정하는 구약 24권(70인역으로 보면 39권)만을 구약 성경으로 인정합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성경은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의 증거이므로 교회가 결정한 성경의 권수를 루터가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는 "새로운 교회"를 천명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 밖에 루터가 번역한 성경은 원래의 성경에서 고쳐진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영상에서 지적하신 대로 루터는 여론전에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과 글들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퍼지지 않았다면 위클리프와 같은 운명을 겪었을 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있어서 루터의 이런 행적은 정말 그가 가진 '교회에 대한 개혁'이라는 순수한 마음이 끝까지 그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을지를 의심해보게 만드는 점들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과 루터 이야기가 나오면 마음이 미어집니다.
어쨌건 소위 종교 개혁으로 유럽의 지형이 변하고 그리고 이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영상을 보고 그리고 이렇게 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느끼는 것은, 사람들의 선택이 얼마나 하느님을 아프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입니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화합하기 위해 지금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신부님과 목사님, 그리고 여러 신학자분들께서 함께 성경을 번역하여 '공동번역 성서'를 내놓기도 했고 한국 가톨릭 교회와 일부 개신교 공동체는 20여년 동안 이를 공인 성경으로 사용했었습니다. 이 밖에 종교간 대화와 하합의 운동은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 세속 권력에 물든 교회 지도자들을 비롯한 중세 시대에 크게 잘못하고 부패한 가톨릭 교회는 20세기에 이르러 자기 반성을 하고 있으며 그때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행해진 모든 폭력과 잘못에 대하여, 가톨릭과 개신교는 지금도 마음 아파하고 참회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러한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며 다시금 역사를 되돌아봅니다.
다시 한 번 좋은 영상을 만들어주시고 업로드해주셔서 감사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