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컴퓨터, 그 가깝고도 먼 거리

<기획>
워드프로세서 '한글'의 공동 개발자인 한글과컴퓨터 사의 정내권 이사,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인 케임브리지 대학의 스티븐 호킹 교수, 인터넷 소사이어티 회장을 역임한 미국 MCI의 빈튼 서프 부사장, '넷데이 '96' 주창 자인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존 게이지 수석 연구원…. 이상의 사람들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컴퓨터를 활용하여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점이고, 다른 하나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이다. 컴퓨터는 장애인에게 무한한 자유를 창출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오는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과연 우리의 컴퓨터는 장애인과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지 살펴보았다.
취재 장동준 기자 liberty@howpc.com, 서주연 기자 ginnie@howpc.com | 사진 김수진 기자
장애인은 움직임이 부자유스럽다. 따라서 컴퓨터를 배우고 활용하는데 일반인에 비해 두세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더욱이 컴퓨터가 장애인용으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면 활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에 장애인용 컴퓨터 시스템이 전무했던 시절만 해도 시각이나 청각 장애인들은 컴퓨터 활용을 생각하기조차 어려웠고, 지체 장애인들은 스틱을 입에 물고 자판을 두드려야 했다.
장애인용 컴퓨터 시스템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것은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1988년 올림픽 개최를 전후해서다. 기존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장애인복지법으로 바꾸면서 부족하나마 장애인 교육이나 취업에 대한 법규가 명문화되었고, 비하의 의미가 강한 장애자라는 표현도 이 때 장애인으로 정정됐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컴퓨터란 용어조차 보편화되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몇몇 중소업체가 외국의 장애인용 컴퓨터 시스템을 수입해 보았지만 시장의 미성숙으로 곧 사그러들고 말았다.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판다"는 심정으로 장애인 스스로가 컴퓨터 활용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국내에 장애인용 컴퓨터 시스템 개발의 계기가 되었던 MBT(Multi Braille Translator, 점자변환기) 역시 90년에 시각장애인인 이대희 씨에 의해 개발된 것이다. 이후 갖가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선보이기 시작했고, 95년을 전후해 다양한 시스템들 이 대거 등장했다. 현재 PC 사용자의 대다수가 사용하고 있는 윈도 95도 제어판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 아이콘이 그려진 <내게 필요한 옵션>기능이 갖추어지면서 장애인들도 PC 활용의 기회를 넓히게 되었다.

장애인 스스로 만든 최초의 장애인용 컴퓨터 시스템

현재 장애인 컴퓨터 시스템을 살펴보면 하드웨어로는 신체장애인의 특성을 따라 컴퓨터 접근을 돕는 제품이, 소프트웨어로는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보조 장치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장애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서 이들 시스템들은 가지각색이다. 요컨데 시각장애일 경우에도 전맹용과 약시용으로 구분된다.
가라사대 사진가라사대 사진
가라사대 사진
 
소리눈 사진소리눈 사진
소리눈 사진
 
아이즈 2000아이즈 2000
아이즈 2000
 
일단 가장 많은 종류의 시스템을 확보한 시각장애인용 시스템을 살펴보면 크게 음성합성카드, 점자 프린터와 화면 읽기, 점역 및 통신 프로그램이 있다. 이중 음성합성카드는 전맹들에게는 필수적인 하드웨어로서 국내에는 유일하게 디지콤(02-261-1534) 사가 개발한 '가라사대(가격 25만원)' 가 있는데, PC에 장착해 '소리눈'이나 '스크린리더' 등의 화면읽기 프로그 램을 설치하면 모니터상에 올라온 글자들을 음성으로 들려준다.
시각장애인용 통신과 인터넷용 프로그램도 역시 '음성화'를 통한 PC 활 용을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부가적으로 화면 갈무리와 점자인쇄 기능이 첨부되는 형식인데, 약시 장애인을 위해 돋보기 기능을 갖춘 크린그린 (02-512-5361)의 '소리샘', 청주맹학교(0431-53-7761)와 충북대 컴퓨터공 학과가 함께 만든 '소리로'가 대표적인 시각장애인용 통신 프로그램이다. 인터넷 활용을 위해서는 삼성데이터시스템에서 개발한 매직보이스, 그래픽 파일이 포함된 문서까지 지원하는 시각장애인용 웹 브라우저인 링스(Lynx) 가 있다.
점역 프로그램 사진
시각장애인들도 텍스트 파일을 읽는다. 보통 점자 프린터로 텍스트 파일을 출력하여 읽는데, 이 경우 점자로 번역해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현재 번역 프로그램으로는 재활공학센터(02-451-6001)의 '브레일베스트', 충북대 컴퓨터공학과와 한국 IBM이 공동 개발한 '점한'이 있다. 또 관련 프로그램 으로 점역기능과 점자 타자기의 자판 배열을 가진 워드프로세서 '브라보 2.5(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 무료배포 02-416-2596)'가 있다.
한편 청각장애인들은 시각장애인에 비해 컴퓨터 개발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외국의 대형 컴퓨터 제조업체에서 개발한 시스템에 의존하는 실정인데, '음성인식'이 그 핵심이다. 보통 '음성인식'이라고 하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나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청각장애인들은 이 기능을 통해 음성을 텍스트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수화를 몰라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된다.
음성인식 기능이 PC에 적용된 것은 CPU의 처리속도가 빨라지고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DSP)칩이 상용화되면서부터다. 대표적으로 작년 7월에 개발, 출시된 미국 IBM 사의 음성입력 PC(가격 699달러)가 있는데, 분당 70∼100 단어를 인식하는 성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글을 지원하지 않아 영문 윈도에서만 사용이 가능하고 사전에 등록된 단어만을 인식한다는 문제점이 있어 국내 보급이 어려운 실정이다.
반면 국내에는 청각장애인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될 수화를 이해하는 컴퓨터가 개발돼 15만명에 가까운 청각장애인과 40만 청각장애인 가족에게 는 희소식이 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변증남 교수팀이 개발한 '표준수화 통역시스템'이 그 것인데, 말 그대로 수화를 알아듣고 전달하는 통역 컴퓨터다. 24개 센서를 부착한 '사이버 글러브'를 양손에 끼고 수화를 하면 컴퓨터는 손가락의 굴절 정도, 손등의 방향, 공간 위치 등을 계산해서 의미를 파악한다. 또 그 반대의 통역도 가능해 정상인들이 컴퓨터 자판에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입력하면, 컴퓨터는 이 글을 모니터에 3차원 그래픽의 수화로 변환시켜 청각장애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개발중인 표준수화 통역시스템은 현재 20여개의 기 본적인 수화동작과 31개의 지문자(수화의 자모음) 인식이 가능하다. 1백70 개 단어는 직접 통역을 하고, 그밖의 단어는 지문자를 하나씩 통역해서 의 미를 전달하는 방식을 사용해 기본적인 의사전달이 가능하다. 또한 이 컴퓨터는 통역된 수화의 의미를 멀리 떨어져 있는 청각장애인과 정상인에게 전달하는 네트워크 기능도 갖고 있다. 변증남 교수는 "내년 경부터 청각장 애인학교를 중심으로 간단한 송, 수신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급할 예 정"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 95년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의 58.3%가 신체지체장애 인이다. 더욱이 지체장애인의 장애 원인 중 후천적 요인이 95.7%이기 때문 에 적당한 시스템만 갖추어진다면 타장애인에 비해 컴퓨터를 보다 잘 활용 할 수 있다. 국내의 지체장애인용 시스템 개발의 선구자라면 우경복지재단 (02-277-3296)을 꼽을 수 있다. 지난 95년 창립된 우경복지재단 부설연구 소에서 다양한 시스템들을 개발 중인데, 입김을 불어 넣어 마우스를 클릭 하는 효과를 내는 입력장치, 손 부자유스러운 장애인을 위한 입력장치와 타원형 모양의 조이스틱, 정신지체장애인이 키보드를 사용할 때 원하는 키 만 입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키가드(Key Guard) 등 헤아릴 수 없이 많 다.
또한 장애인들의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한 각종 멀티미디어 CD타이틀의 개발도 주목할 만하다. 95년 말에는 매킨토시용으로 달팽이 과학동화 1집 과 언어장애 아동을 위한 말가르치기 프로그램인 말동무 등을 개발했고, 작년 9월 이 두 타이틀의 IBM 호환컴퓨터용 버전과 정신지체장애인를 위한 한글 가르치기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입출력장치에서 통합시스템으로 바뀌는 외국의 장애인 시스템 "집 주인이 휠체어에 부착된 센서를 이용해 집안으로 들어온다. 인기있 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들고 다니던 리모트 컨트롤러로 TV를 켜고, 지루하 다 싶으면 TV세트 메뉴에 내장된 음성인식을 통해 '채널 64로'라고 명령해 채널을 바꾼다. 집안의 텁텁한 공기는 TV세트 메뉴에 나온 옵션을 선택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TV 스크린상으로 오락용 CD를 불러와 게임을 즐긴다. 평균 30개의 단어를 입력하는 드래곤시스템 사의 음성인식 장치인 '드래곤딕테이트시스템'을 이용해 글을 적는다."
작년 6월 의료엔지니어링 자원봉사단이 선보인 장애인을 위한 주거 시스 템 '퓨처 홈 인스티튜트'를 사용한 일상 생활이다. 특히 퓨처 홈 인스티튜 트는 각 장애별로 '맞춤 시스템'이 가능해 그 효용성이 높다. 이 시스템은 홈뱅킹 쇼핑같은 인터페이스 기능을 갖춰 미국 전역의 도서관과 행정기관 에 온라인 연결될 전망이다.이처럼 선진국의 장애인을 위한 컴퓨터 시스템 개발은 국내에 비해 상당히 앞서있다. 잘 정비된 장애인 복지정책과 높은 기술력이 맞물려 장애인들의 재활의지를 복돋아주는 환경이 뒷받침되고 있 기 때문이다.
작년 95년 말, 미국 인구조사국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장애인은 전체 미국인의 20%에 해당하는 4900만명. 이중 절반은 중증장애인이다. 따라서 상실된 감각을 보충해준다든지 불완전한 활동을 도와주는 재활엔지니어링 의 필요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미국은 2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장애인을 위한 기초적인 로봇장치에서부 터 가상현실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컴퓨터 접근방법을 시도해 왔다. 또 90년 제정된 법률에 '장애자의 고용과 정보 접근에 대한 권리'가 보장 돼 컴퓨터통신망을 활용한 신체장애인들의 재택근무가 가능해졌고, 장애인 을 위한 재활시스템 개발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즘에는 미국 장애인 컴퓨터 시스템을 입출력 장치의 개발에 국한시키지 않고, 생활에 적용시키는 방향으로 시스템 기술을 확대하고 있다.
컴퓨터 기업들이 장애인 시장을 겨냥해 시스템 개발에 주력하는 움직임 도 장애인용 시스템 시장에 활력을 불어주고 있다. 그 예로 애플 사는 작 년 4월부터 장애인용 우편주문 서비스인 '아일 17'을 실시하여 자사 제품 에 장애자용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를 번들 공급하고 있다. 공급 제품으로 는 단어간의 상관관계와 사용 빈도수를 고려하여 입력하려는 단어군을 미 리 제시, 입력할 수월하게 해 주는 소프트웨어, 입김을 불어 마우스를 클 릭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헤드마스터', 움직임이 어려운 장애인들이 키보드 입력대신 머리를 가로저으면 센서로 입력효과를 주는 장치 등이 그 것이다. 이외에 전자 휠체어의 배터리를 이용해 매킨토시 노트북인 파워북 을 이용하도록 돕는 장치도 제공되고 있다.
특히 미국이나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는 컴퓨터를 활용이 장애 아동의 교 육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은 지난 90년에 개정한 장애 인 교육법에 따라 가장 먼저 장애 아동 교육에 컴퓨터를 활용하기 시작한 국가이다. 장애 아동과 보통 아이들을 같은 교실에서 함께 교육하는 미국 의 학교들은 이미 학교 차원에서 장애 아동용 컴퓨터를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교육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만도 현재 3백여개. 풍부한 멀티미디어 CD타이틀과 소프트웨어등을 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겠 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에드마크(Edmark)사의 '하우스' 시리즈같은 장애아 동용 CD타이틀이 있고, 교과서를 포함한 학교 교재들도 대부분 CD 타이틀 로 개발되어 컴퓨터의 도움을 받으며 보통 아이들과 동일하게 수업을 듣도 록 여건이 마련되었다.
지난 75년 장애인 권리선언을 채택하면서 장애인 복지를 획기적으로 강 화한 일본 역시 90년대 초부터 컴퓨터를 장애아동을 위한 교육에 적극 활 용하고 있다. 일본 후생성은 신체장해자복지법에 근거해 2급 이상의 장애 아동에게 무상으로 컴퓨터를 보급한다. 각종 장애인용 장비를 개발하는 '공방(工房')이 각 현마다 배치돼 장애 아동들이 컴퓨터를 이용하는 데 지 장이 없도록 장비를 제공하고 있다. 또 이렇게 컴퓨터를 활용한 교육은 성 인이 되어서도 생업을 영위하는 사회적인 보장이 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후쿠오카의 한 컴퓨터 관련 기업을 들 수 있는데, 전 직원의 3분의 1이 장 애인이다. 일본의 장애인에게 컴퓨터는 말 그대로 장애를 극복하고 생활에 서 활용되는 훌륭한 도구인 것이다.

컴퓨터 활용 장애인은 전체의 1% 수준

컴퓨터 활용 분야에서 장애인들에게 가장 유익한 것은 PC통신이다.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믿기 힘 든 일이겠지만 나우누리 장애우 동호회인 나누리의 오프 모임-통신상이 아 닌 서로 얼글을 보며 만나는 모임-에서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바깥 나들이 를 한 장애인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활동에 제약을 받는 장애인들에게 다른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사회와 융합되게 만드는 PC통신은 장애인 들에게는 비트를 초월한 또 다른 세상인 것이다.
현재 PC통신상에는 장애인의 둥지를 튼 장애인 단체가 활발한 활동을 벌 이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천리안의 '재활통신' CUG에서 시작해 94년 10월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재활정보센터에서 운영하는 '곰두리'가 개설되면서 본 격적인 활동을 펼쳤다. 곰두리는 현재 정부시책, 관련법규, 민간 재활 서 비스 및 프로그램, 재활관련 기관 주소록, 재활요원 정보 등의 데이터베이 스를 제공하고 재활전문도서나 점자 및 녹음 도서 검색 기능, 재활 관련 논문, 자료집 등이 있는 도서관, 구인구직과 장애인 용품 알뜰 시장 정보 를 제공하는 국내 유일의 재활전문 데이터베이스다. 이 밖에도 많은 관련 동호회들이 각 PC통신망마다 개설되어 있다. 아직은 초기단계지만 인터넷 분야에서도 PC통신과 마찬가지로 장애인 관련 시스템에 관련된 다양한 정 보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PC통신에 이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 부상하 고 있는 인터넷을 사용하기에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나 정책이 따라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국내 인터넷상에서 장애인을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은 장애인 관련 사이트를 제외하고는 거의 드물다. 미국에서는 이미 일부 웹 디자이너들이 모여 홈페이지에 프레임을 넣지 않는 캠페인을 벌이며 시각 장애인을 위한 홈페이지 디자인 정보를 교류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시 각장애인은 텍스트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게 하는 별도의 '텍스트 온리 (Text Only)' 페이지가 절실한 실정이다. 또 국내외의 노력에 비해 교육이 나 취업 등 실질적인 장애인의 생활을 보장한다는 우리나라의 장애인 정책 도 10년전과 다름없는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 1981년 장애인의 해를 맞이하여 전체 인구에서 장애 인구가 차지하 는 비율을 정상인 열명 중 한명 꼴인 10%로 정한 WHO(World Health Organization)의 기준은 지금도 장애인의 수를 파악하는 지표로 통용되고 있다. 이 수치에 따르면 국내 장애인 수는 450만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 다. 그런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95년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장애인 수는 105만 3,000명이다.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나는 이유는 외국과 달리 정신 질환을 장애인으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 수를 축소지향적으로 규정하는 현실은 장 애인 차별을 암암리에 합리화시킬 우려가 있다. 즉, 장애인 수가 적을수록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해도 된다는 논리가 통용될 소지가 많다는 말이 다. 열명 중 한명이 장애인이라는 말과 백명 중 두명이 장애인이라는 말은 어감 자체가 틀릴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보시대라는 요즘, 얼마나 많은 국내 장애인들이 정보의 혜택을 받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애인들 은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겪는 어려움을 컴퓨터를 활용하는데서도 동 일하게 느끼고 있다.
국내 장애인의 PC 보급율이나 PC를 통한 재활, 교육 등은 일반인들과 비 교가 안 될 정도로 낙후된 실정이다.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 장애인은 전 체 장애인의 1%. 정부가 장애인 재활 학교를 중심으로 컴퓨터를 보급하고 있긴 하지만 이들 장애인의 재활 교육 혜택은 전체 장애인의 21% 선이다. 또한 재활 학교 조차 PC 교육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는다. 물론 유일한 국 립특수학교인 경기 안산의 신성학교나 은평복지학교처럼 전체 장애 아동들 이 1인 1대의 개인용 컴퓨터를 갖고 교육을 하는 학교도 있다. 그러나 이 런 학교는 극히 일부이며 정신지체장애인의 재활학교인 다니엘 학교의 경 우에는 15명으로 구성된 한 학급마다 한 대의 PC가 돌아가기도 힘든 실정 이다. 심지어 하나 있는 컴퓨터 교실 조차 멀티미디어 PC는커녕 286 XT PC 6대가 전부다.
시설뿐 아니라 컴퓨터 교육을 맡고 있는 교사 문제도 여의치않다. 그나 마 다른 교육기관에 비해 여건이 좋다고 알려진 일산장애인직업훈련원의 경우, 정원 15명의 학생에 교사는 3명 밖에 안된다. 수치상 교사가 3명이 면 학생 5명 당 1명 꼴이니 넉넉한 교사진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오산이 다. 하루 6시간 씩 시각, 청각, 지체 등 다양한 장애인이 함께 수업을 받 는 상황을 감안해 본다면 이 수치는 전혀 많은 것이 아니다. 일산장애인직 업훈련원의 컴퓨터 담당 교사인 최영미 씨는 강의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받는데서 어려움이 생깁니다. 특히나 청각장애인들은 강의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지요. 가능 하다면 학생 1명 당 1대의 PC가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그렇지 못합니 다."
어렵사리 마련한 교육의 장이 제도라는 걸림돌 때문에 무산된 경우도 있 다. 재활정보통신 곰두리가 올해부터 신입생 모집을 예정으로 추진했던 온 라인 장애인 전문대학도 관련법의 규정에 따라 취소됐다. 온라인을 통해 행동의 부자유를 극복하고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제도의 벽에 막힌 셈이다. 최근 붐을 일으키고 있는 PC통신 업체나 대기업의 온라인 대 학 개설에 비추어 볼 때 형평성의 문제가 지적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 다.

협소한 시장, 정책의 부재, 왜곡된 인식이 소외의 주범

장애인 시스템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정부 통계에서 나타났듯이 1백만 명이 조금 넘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장애 보조 시스템 시장이 생겨날 수 없게 된다. 근육디스트로피 장애인인 자유기고가 이현준 씨는 그 이유를 "장애의 유형이 너무나 광범위한 양태를 보이고, 경제력이 넉넉하지 않은 장애인들이 사용하기에는 시스템 보조 기구의 비용이 턱없 이 비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즉, 시각 장애, 청각 장애 등 각 분야별 로 시스템을 개발한다면 그 시장의 수요는 더욱 적어지게 된다. 따라서 국 내 인구수와 맞먹는 4천만 명의 장애인이 있는 미국의 장애인 용품 시장에 비해 국내는 있던 개발 회사 조차 없어지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일례로 척추 장애자인 경우,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앞에 앉아 컴퓨터 의자부터 필요한데, 이 컴퓨터 의자를 만드는 데만도 140만 원선. 신체 장애자마다 고려해야할 것들이 천차만별이어서 거의 수작업으 로 제조되는 상황이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장애인용품을 만드는 업체에 별다른 세금이나 제도적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수입품의 경우에 일부용품 은 의료기기가 아닌 사치품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현준 씨는 장애인의 한 명으로서 간단한 아이디어, 세심한 배 려만 있다면 시스템을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요컨데 팔힘이 없는 그가 컴퓨터를 켜고 끄기 위해 볼펜을 입에 물고, 디스켓과 CD 타이 틀을 넣고 빼기 위해 디스켓을 입으로 물어야 하는 민망한 짓은 파워 버튼 과 드라이브들을 본체와 분리하거나 CD롬 드라이브에 프론트로딩 방식을 채용한다면 해결된다는 것이다. 또 중증 장애자들도 쉽게 시스템 업그레이 드를 할 수 있도록 버튼 하나만 눌러 본체의 뚜껑이 열리게 하는 것도 하 나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우경복지재단의 김광선 소장도 "국내 장애인들이 정보화를 위해 정부의 지원책이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며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이 필요함을 표현했다. 요컨데 정부가 요즘 초고속 통신망을 추진하면서 장애인 복지 차원에서 장애인 학교에도 이 망을 깔아 시범을 보이고 있는데, 이보다 장 애인들에게 시스템의 보급이 시급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불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보급이라고 무작정 PC를 각 재활 학교에 보 내지 말고 장애 유형에 맞는 PC의 보급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정신 지체 장애인의 경우 다감각적인 자극을 통해 학습 효과를 높여줄 멀 티미디어 PC가, 허리를 가눌 수 없는 신체 부자유 장애인에게는 노트북을 주는 사전 조사가 필요하고 장애인들이 컴퓨터를 통해 무엇을 하고 싶어하 는 지를 아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 같은 조사의 미비는 정부 및 일반 기업들이 개발한 CD-ROM이나 소프 트웨어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라고 김광선 소장은 말한다. 정신 지체 장애 자들은 눈으로 보는 것과 손의 움직임의 협응이 거의 힘들다. 결국 정신 지체 장애자들은 마우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대부분의 프 로그램은 이들이 남의 손을 빌어야 하도록 조그만 마우스 커서 중심의 것 들로 개발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대부분의 장애인용 프로그램이나 하드웨어들은 장애자 스스로 고안 하는 경우가 많다. 양손의 사용이 부자유스러운 신체 장애자들을 위해 컨 트롤이나 시프트 키를 고정시켜 한 손만으로 키보드를 사용하도록 하는 '한손 자판' 프로그램의 개발자도, 화면의 내용을 음성으로 판독시키는 SRD(Screenreader) 개발자도 모두 장애인들이었고 이 외에 간단한 프로그 램들은 장애인 스스로가 만들어 통신에 배포하고 있다.
하드웨어의 보급 이외에도 장애인들이 정보사회에서 소외되는 모습은 비 일비재하다. 컴퓨터를 사용하기에 그다지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 청각 장 애인의 경우, 수화를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컴퓨터 관련 신종 용어들은 수화를 통해 어떻게 소화하고 있을까? 결론부 터 말하자면 이들은 포맷(format) 하나 들어있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 포맷 이 무엇인지를 수화로 설명하는 실정이다. 영자로 하나하나 표시하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 수화는 나라마다 틀려 알파벳의 의미가 없게 된다. 따라 서 청각 장애자들은 정보화 사회를 볼 수 있지만 그 속도를 따라가기 힘든 실정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오늘날의 정보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일반인들의 편협된 생각이다. 흔히 '장애자들이 무슨 컴 퓨터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겠냐?'라는 생각을 한다. 또 장애인 가정에서 조차 컴퓨터는 고가의 소중한 가전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장애인들의 접근 을 미리 막는 경우가 빈번하다. 결국 장애인들이 그네들의 정보 권익을 찾 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장애인의 컴퓨터 활용을 위한 첫걸음, '접근권(Right of Access)'

장애인과 컴퓨터, 이 둘을 연결하는데 항상 언급되는 핵심 단어는 '접근 권(Right of Access)'이다.
방송통신대 법학과 강경선 교수는 '권리의 주체로 하여금 권리의 목적이 나 대상에 근접하여 그를 이용하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법률상 부 여된 권리를 실질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라고 접근권을 설명한다. 예를 들 어 장애인들이 교육을 받거나 편의 시설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시 설을 보장받는 권리도 접근권의 일종이다. 결국 접근권은 장애인들이 컴퓨 터, 특히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국가적이나 사회적인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시발점이 된다.
이 접근권은 80년대 후반부터 주목받기 시작하여 현재 해외에서는 이미 장애인의 기본 권익을 보장하는 법규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국내에는 장애 인 관련법으로 장애복지법, 특수교육진흥법,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있었는데 지난 3월 18일에 국회에서 통과된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 4조에 접근권이 처음으로 명시되게 되었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 4조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 보면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동등하게 이용하고, 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 고 명기돼있다. 즉, 장애인들이 컴퓨터나 통신, 인터넷을 통해 정보에 접 근할 수 있도록 법적인 보장이 된 셈이다.
하지만 아직 산적해 있는 문제도 많다. 우선 법의 집행 절차나 방법이 언급된 시행령이 나오기까지는 어느 정도 실질적인 접근권의 보장이 될는 지 의문이다. 또한 접근권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그 권리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선 장애인과 컴퓨터를 연결해 주는 시스템의 제공이 필요하다.
나우누리의 장애인 동호회 전 시솝이자 중증 장애자인 배용호 씨는 "장 애자를 위한 컴퓨터 관련 제품이 보장구(장애인의 활동을 도와주는 기구) 로써 인정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걸려있다"고 말하며 제도가 현실적으로 힘 을 발휘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였다. 또 배용호 씨는 "국내에는 장애인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컴퓨터 시스템이 거의 드물다. 따라서 대부분의 장비를 외국에서 수입하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극소수의 장애인만이 이런 장비 를 사용하고 있다. 만일 장애자를 위한 컴퓨터 관련 제품이 보장구로 인정 을 받지 못한다면 접근권은 유명무실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현행 관세법 상 지체 장애인들에게 필수적인 전동 휠체어는 의학용품이 아닌 사치품으로 규정되어 있어 제품 가격에 버금가는 관세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제품이 장애인 보장구로서 인정받게 된다면 자연히 제품 가격이 낮아지게 되고 더 많은 장애인들이 접근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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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통신은 내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PC통신을 통해 현재의 남편을 만난 척수장애인 이윤자 씨
경기도 안산시에 사는 이윤자 씨는 지금 꿈 같은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많은 어려움을 딛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고 며칠 전에는 득남까지 했다. 물론 결혼하는데 어려움 한 번 안 겪은 사람 없고 결혼해서 아들 낳은 사람도 많겠지만 이윤자 씨의 행복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윤자 씨는 척수 손상 1급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학력고사를 며칠 앞둔 85년 11월 17일 이윤자 씨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병원의 진단 결과는 경추 손상. 즉, 척추의 가장 윗부분인 경추를 다쳐서 목 이하의 신경이 마비된 것이다. 꽃다운 스무살의 나이에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전신마비 판정은 꿈많은 이윤자 씨의 인생을 한순간에 암흑으로 만 들어 버렸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었다.
2년 6개월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퇴원을 한 후, 이윤자 씨는 무언가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기를 할 수 없는 그녀는 컴퓨터를 택했다. 일반인도 PC를 배울 때 고생을 하는데 손도 아니고 입에 문 스틱으로 한 자 한 자 입력해야 하는 과정은 그녀에게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다. 어느 정도 입력이 익숙해지자 PC통신을 시작했다. 하이텔에서 장애인과 일반인의 친목 을 도모하는 '두리하나'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공간을 초월해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듣고 말할 수 있는 PC통신은 그녀에게 가뭄의 단비같은 열린공간 이었다.
PC통신을 한 지 3년 정도 지난 95년 6월, 한 남자에게 메일이 왔다. 반 가운 마음에 어렵사리 입력한 편지를 보냈다. 다음날도 또 편지가 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2달만에 편지의 주인공이 찾아왔다. 편지의 주인공은 현재 이윤자 씨의 동반자인 이현수 씨였다. 두 사람은 양가의 반대를 이겨내고 작년 6월 결혼을 했다. 교통사고로 뒤바뀐 그녀의 인생을 PC통신이 바로 잡아준 것이다.
"PC통신은 내 인생에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사실 사고가 있고 나서 지금같은 생활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컴퓨터를 배우고 통신을 하고 나서야 또 다른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았죠. 하지만 장애인이 컴퓨터를 배우는데는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나같은 척수 장애인에게는 발과 같은 전동 휠체어 하나에 소형 자동차 값인 350만원이나 합니다. 물론 수입품이라서 비싼거죠. 엄청난 관세가 붙거든요. 컴퓨터 시스템 이야 오죽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