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연습

카테고리
드라마/영화
마음 공부
작성일
Aug 7, 2021 11:5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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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자전거 탄 소년>과 <나의 아저씨>의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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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0 도쿄 올림픽"이 오늘 끝났다. 이번 올림픽을 위해서 선수들은 얼마나 많이 땀흘려 연습했을까?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 뿐만 아니라 함께 경기에 참가한 모든 이는 우리가 헤아릴 수도 없는 시간 동안 훈련하고 또 연습했을 것이다. 안타깝게 고배를 마신 선수들도 최선을 다했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수능을 보고, 자격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본 수많은 사람들, 그들도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이나 회사에 합격한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겠지만 이들 모두가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내달렸으니 그들의 도전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인생은 연습할 수도, 미리 훈련할 수도 없다. 우리네 삶은 언제나 실전이고 현재진행형이다. 그렇게 나는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 학교에서는 어른이 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렇게 미리 연습할 기회도 없이 나는 어른이 되어가고, 어른의 판단을 하고 어른의 말을 하고 어른의 생각을 해야 한다.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그리고 그 수많은 시험을 치르기 위해 연습하고 훈련했던 이들에 비해 나는 어른이 되는 연습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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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탄 소년>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의 이야기'이다. 세상에 던져진 소년처럼 어른들도 그렇게 자신들의 삶에 던져졌다. 어른들은 닥처오는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한다. 소년의 말을 들어줄 시간은 많지 않아보인다. 심지어 소년의 아빠도 삶의 무게에 짓눌려 아들을 버리는 선택을 하고 만다.
마음 둘 곳 없이 헤매는 소년은 그저 보고싶은 아빠와 소중히 여기는 자전거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소년에게 녹록치 않았던 만큼 어른들에게도 그랬다. 치열한 삶의 챗바퀴를 어른들을 돌리고 또 돌렸다.
그 혼란의 수렁에서 소년을 잡아 준 어른이 있었지만, 그녀도 똑같은 삶의 짐을 지고 가고 있었다. 소년에게 배신당한 순간 그도 결국은 울었다. 그녀도 결코 어른 연습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어른의 삶'에 던져진 어른이었다. 그러나 그녀, 사만다는 시릴에게 어른다운 어른이었다.
<나의 아저씨>에서도 어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이제 막 어른의 세계에 발을 디딘 청춘은 그녀를 이용하여 '아저씨'를 피괴하려는 어른들을 만나고 그들과 거래한다. 그녀에게도 지키고 싶은 가족이 있었으니까.
우직하게 자기 길을 가던 아저씨는 '어른의 사정'으로 사내 정치에 휘말리게 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회사의 과장이면서 한 집안의 가장. 삼형제 중 가장 잘 나가는 둘째라는 무게를 지고 있는 아저씨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번민하고 무너지고 좌절하면서도 온전히 어른의 무게를 감당하며 다른 이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눈다. 아저씨는 어리다는 이유로 결코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다. 약한 이에게 약하고, 강한 이에게 강했다.
결국 마음 둘 곳 없는 그녀, 이지아는 편견 어린 시선 속에서 한 사람의 '존재'로 자신을 인정해 준 아저씨를 지키기로 결심한다. 정치력도, 얍삽함도 가지지 못한 그저 그런 어른인 아저씨. 하지만 박동훈은 내가 본 어떤 어른보다 더 어른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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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에, 정말 어른들은 무슨 일이건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들의 판단은 언제나 옳고, 그 결정은 늘 내 생각보다 깊고 앞서 있는 줄 알았다. 어른들은 아프지 않은 줄 알았다. 뭐든 잘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어보니 내 앞에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았고, 구멍 많고 실수 투성이인 내 판단으로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한 적도 여러번이었다. 뻔히 보이는 해결책을 두고도 괜한 고집을 부리며 곁길로 세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정말 아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그래서 내려놓아야 했던 일도 분명 있었다.
내가 만났던 어른은 아프지 않은 게 아니라, 아프지 않은 척 하는 사람들이었다. 실은 그들도 똑같이 힘들었고 똑같이 실수하고 똑같이 삶의 무게를 견뎌왔다. 그들에게도 어른 연습을 할 기회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어른 같지 않은 어른'도 분명 있었다.
시릴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그를 범죄로 내몰기도 하고,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을 지도 모를 시릴의 사건을 무마하기도 하며, 권력과 재물을 위하여 이지아 패거리 쯤은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분명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일 테다. 다른 사람의 고통은 모른 채하고 그저 나만 아니면, 우리 가족만 잘 되면 된다는 어른의 모습,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모습이 과연 나에게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어른 연습할 기회가 부족했노라 핑계댈 수 있을까?
내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 무엇보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기대는 것. 그것이 언제나 실전인 삶을 살아가는 사만다와 박동훈을 어른다운 어른으로 만들어 준다고, 그들은 위로 자라는 성장이 아니라 아래로 튼튼해지는 성숙을 택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게 결국 어른 연습이었다.
나도 완벽한 어른이 아닌,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다. 내 팔을 찌르고 도망가는 시릴과 밥 좀 사달라며 유횩의 손길을 내밀던 이지아를 보듬으며 기꺼이 내 어깨와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다. 이런 고민을 인생에 녹여내려는 마음이 제발 옅어지지 않기를! 그러다 보면 언젠가 시릴과 함께 자전거를 달리거나 꿋꿋이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이지아와 불현듯 마주치더라도 조금은 덜 부끄러운 어른이 되어 있지 앝을까?
 
내일부터 다시 나는 어른을 연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