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좀 가만히 내버려두면 안 되나?

카테고리
낙서
교육
작성일
Jan 18, 2021 03:35 AM
notion imagenotion image
 
지금은 소프트웨어 교육이 화두다. 2015 교육과정에서 정보 교과는 상당히 많은 분량이 소프트웨어 교육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이제는 또 AI 교육이란다. 이렇게 교육과정이 시류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게 과연 옳을까? 변화 무쌍한 "4차 산업 혁명"--이 말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느 것일까?
사실 소프트웨어 교육이나 AI 교육은 별 다른 게 없다. 생활 속에서 문제를 접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심어주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게 만드는 열정을 키워주며, 해결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의 틀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학생들이 "탐구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키워주면 되는 것이다.
새벽별 보며 집을 나서 학교와 학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몸과 마음이 찌들어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학생들에게서 과연 열린 마음과 열정을 찾아볼 수 있을까? 지겹도록 공부만 하는 학생들에게서 소프트웨어와 AI의 토대가 되는 언어능력과 수리 능력을 키워낼 수 있을까? 그들이 무언가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호기심 가득한 "탐구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질 여럭이나 있을까?
다음 교육과정에서 과연 정보 교과에는 또 무슨 내용이 들어올까? 머신 러닝과 신경망 학습에 필요한 수학 개념들이 왕창 들어오면, 나는 또 학생들을 어찌 가르쳐야 할까?
"애들, 좀 걍 내버려두세요!"
라고 말하면 내가 너무 무책임한 교사일까?
아직 결혼도 안하고 애도 안 낳아봐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걸까?
20대의 절반이 인격 장애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파격적인 기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지금 너무 고생하고 있다.
애들 좀... 내버려두면 좋겠는데....
어차피 기를 쓰고 죽어라 공부해도 대학 졸업하면 공시다 임용이다 또 죽으라고 공부해야 할 텐데.... 오늘도 수포자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양산되고 있을 텐데...
이게 진짜 행복한 일인가?
AI교육 한답시고 제발 좀 설레발이나 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AI 대학원... 좋다. 근데 공대생 1학년을 강의하는 교수님들은 한결 같이 신입생의 수리 능력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아니, 애들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 결과가 이거라고? 그럼 우리 아이들은 12년 동안 뭘 한 건데? 우리는 뭘 가르친 건데?
중학교 때 밤을 불태우며 누구보다 재밌게 코딩했던 나였지만 누가 시켜서 꾸역 꾸역 코드를 입력했더라면 진저리치게 컴퓨터가 싫어졌을 테다.
그러니, 애들 좀... 가만히 내버려두면... 좋겠다.
밭에서 채소가 자라는 것처럼, 우리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물 주고 잡초 뽑아주고 거름 주면 되는 거 아닌가? 왜 채소더러 이리 자라라 저리 자라라 해야 하는 걸까...
한 여름 뙤약볕을 굳건하게 견뎌낸 채소들이 시원하게 물을 주면 찬란하게 빛나는 것처럼, 우리 학생들도 굳건하게 지금을 버텨내고 찬란하게 빛났으면 좋겠다. 소프트웨어니, AI니 하는 건, 다 그 다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