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소마 감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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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소마>의 감독 아리 에스터는 한국 영화 마니아입니다. <지구를 지켜야>를 걸작이라 평가하고 <곡성>을 최고의 공포 영화로 꼽았죠. 봉준호 감독은 그를 “차세대 거장 20인” 중 1명으로 선정했고, 아리 에스터는 <기생충>을 2019년 최고의 영화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주고받기 있기없기?
<미드소마>는 영화<지구를 지켜라>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참고해 제작했습니다. 감독 본인의 이별담을 포크호러 구조에 반영해 제작했다고 하는데 어떤 이별을 경험했기에 이토록 기괴한 영화를 만들어냈는지 참 궁금합니다. 참고로 포크호러는 예컨대 폐쇄적인 공동체, 이교도 집단처럼 민담이나 전통문화에서 비롯된 공포를 소재로 만든 영화를 말합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로는 <곡성>이 있죠.
영화는 가족을 모두 잃은 주인공 대니가 남자친구 크리스티안과 그의 친구들을 따라 펠레의 고향 스웨덴 호르가 마을에서 열리는 미드소마 축제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영화는 숫자 9를 상징적으로 자주 다룹니다. 90년마다 미드소마 축제가 성대하게 9일간 열리고, 호르가 마을 사람들의 생애 주기는 9의 배수로 나뉘어 있습니다. 스포가 될 수 있어 더 언급하지 않지만, 9와 관련된 게 또 무엇이 있는지 영화를 보며 확인해보시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유럽 신화에서 숫자 9가 자주 언급된다고 합니다. 예컨대 아스가르드와 같은 북유럽의 세계는 9곳이고 오딘이 지혜를 얻기 위해 지혜의 나무에 매달려 고통받은 날도 9일입니다. 중국 북방계 민족, 몽골 문화에서도 3이나 9가 자주 언급된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지역에선 공통으로 ‘환일현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환일현상은 공기 중에 얼음 알갱이가 있어 해가 여러 개로 보이는 현상을 말하는데, 보통 해가 3개로 보인다고 합니다. 해가 3개로 보이면서 3을 신성시하고, 3의 제곱인 9를 신성하게 여기게 되었을 거라 추정된다고 하네요.
가족을 잃은 여주인공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새로운 공동체에 동화되는 과정은 제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며 스스로 치유됐다고 느끼는 모습에 소름 돋았어요. 전 종종 “무언가를 믿고 따르려는 성질”의 의미로 종교성이란 표현을 쓰곤 합니다. 종교성이 과하면 ‘맹목적’이 되기 쉽다고 생각하는데, 남자친구에게 받은 상처가 집단의 광기에서 비롯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집단에서 위로를 얻고 동화됩니다. 상처를 지닌 인간이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을 때 굴곡진 인생을 살기 쉽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녀의 고통이 자신의 것인냥 함께 울어주는 마을 여성들, 마지막에 자신이 대상자가 아님에도 고통에 공감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의 모습이 정말 그로테스크 했습니다.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사운드도 한몫을 하더군요. 새삼 ‘정서적 공감’의 인위성을 확인하며, ‘이성적 공감’을 할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영화를 보고 나니 “논문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이해가 됐어요. 대학원생, 화이팅...^^ (영화에 잔인하고 선정적인 장면이 다소 있으니 주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