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루> (2008)

날짜

사실은 펑펑 울어보고 싶어 찾아간, 나를 웃게만 하려는 사람.

<멋진 하루> (2008) 이윤기 감독 / 전도연, 하정우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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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전도연 분)는 빌려준 돈 350만원을 돌려 받기 위해 1년 전 헤어진 전남친, '병운'(하정우 분)을 찾아갑니다. 사람은 참 좋지만 순진하고 철없고 눈치도 약간 없는 병운은 하던 사업, 하던 재테크가 언제나처럼 되지 않아 수중에 돈이 없는 상태. 희수는 오늘 꼭 돈을 다 돌려 받아야겠다고하고, 병운은 그럼 (자신의 '사람 좋음'으로) 다른 사람들한테 손을 벌려 돈을 모아볼 테니, 같이 가자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멋진 하루>.
그 둘의 하루 이야기는 <굿 다이노>나 <소공녀>(2017)처럼, 모험담의 형식을 지닙니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여정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난관에 부딪힙니다. 당연히, 그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나서 나눈 대화, 그 난관들의 극복이, 이 둘 사이의 감정에 조금씩 변화를 일으킵니다. 둘은 이 험난한 하루를 어떻게 헤쳐나가고, 어떻게 마무리하게 될까요? 돈을 받는 데에는 성공할까요? 둘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결말이 날까요?
병운은 정말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철없고, 눈치도 없고, 능력도 없지만, 한편으로는 사람 좋고, 순진하고, 밝습니다. 초반엔 한심하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캐릭터인데, 영화가 중반부 쯤 가면 이미 정이 들어있게 되실 거예요.
'이래서 만났었지', '이래서 좋았지'
과거를 곱씹고 병운을 재평가하는 희수의 시선이 관객의 눈에 함께 투영된 것이겠죠. 왓챠의 한줄평을 차용하자면, "계속은 아니고, 그냥 하루 쯤 다시 보고싶은" 그런 사람 병운. 여자 관객분들의 시선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게는 로맨스물에 가끔 등장하는 찌질하면서 폭력적인 남자 캐릭터들(생각해보니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백이면 백 다 등장하는 것 같네요)에 비해 훨씬 stress-free한 캐릭터였습니다.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차갑고 강한 캐릭터인 희수도 사실 자기만의 아픔이 있는, 참 외로운 캐릭터입니다. 표면적으로 많이 드러나진 않지만, 헤어지고 나서도 많은 상처를 받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헤어진지 1년이 지난 오늘, 희수가 병운을 갑자기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고 한 이유는 따로 있었던 것이죠.
"진짜 돈 받으러 찾아온 거야?"
병운은 자꾸 묻고, 희수는 대답을 계속해서 회피하지만, 그 답은 사실 병운도 알고, 희수도 알고, 관객도 모두 압니다. 이 질문은 "아니."라는, 발화되지 않은 대답을 관객의 머릿속에 울리게 하는 장치로 작용할 뿐이죠.
한 번 쯤 펑펑 울어보고 싶을 때, 내가 쌓고 사는 벽을 다 무너뜨리고 그 눈물에 녹아내려버리고 싶을 때, 모순적이게도 무의식은 희수를 병운에게로 이끌었습니다. 병운은 눈치가 너무 없어서, 희수를 웃게만 하고 싶은 바보같은 사람인데 말이에요.
바보같은 캐릭터에게 정이 들 만큼, 그리고 정이 들어가는 그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게 할 만큼, 하정우와 전도연의 연기도 최고입니다. 약간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을 수 있는 대사나 몸짓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잘 넘기며 오히려 본인이 연기하는 캐릭터 안으로 잘 흡수해낸 것 같습니다. 차 안에서 희수가 눈을 살짝 돌리며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이 한 번 클로즈업 되어 나오는데,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감정이 하나의 표정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어요.
가끔 한국어로 된 영화를 보다보면 각본이나 연기가 너무 극적이어서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이 아닌 곳을 배경으로 한국어가 아닌 대사를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 연기할 때는 그 작은 뉘앙스를 어차피 100% 캐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뭐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누가 얼마나 연기를 못하는지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 영화에서는 100을 보여주면 100이 (적어도 8~90은?) 받아들여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반대였습니다. 한국인이어서 이해할 수 있는 그 대사의 진짜 의미, 한국인이어서 느낄 수 있는 그 상황의 불편함, 한국인이어서 느낄 수 있는 어떤 장면들의 재미가, 감상을 더욱 충만하게 채워줍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콕 집어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카메라의 시선입니다. <콜드 워>, <이다>의 감독인 파벨 파블리코프스키 같이 정말 특이한 구도를 사용하는 감독이 아니라면 우리는 영화를 보며 카메라나 '금지된 180도'(카메라의 뒷편)에 대해 망각하곤 합니다. 카메라나 카메라 뒷편의 스태프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면 스크린 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꾸며진 연극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몰입이 깨져버리기 때문이겠죠.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이나 웨스 앤더슨 같은 감독의 영화에서는 화면의 구도가 너무 '아름다워서' 카메라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연출이 너무 '재치있어서' 카메라의 존재를 생각하게 됩니다. 몰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요.
영화의 맨 처음 샷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원 테이크로 찍은 이 롱샷은, 영화의 시작이라면 관객이 모두 기대하는 '중요한 인물', '중요한 사건' '중요한 대사'에 대한 예측을 두 번이나 배신합니다. '얘네가 주인공인가?' 집중하고 있으면 카메라가 움직임을 싹 바꿔서 "아닌데?"하고, "이게 중요한 대사인가?"하고 집중하고 있으면 또 "아닌데?" 뒤통수를 때립니다.
영화가 1/4정도 지났을 때도 또 카메라의 시선만으로 웃음을 자아냅니다. 한참을 A가 B에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놓고, 갑자기 시선을 바꾸어 좀 전까지 화면 밖에 있었던 C의 존재를 보여줍니다. 서사에의 영향력 면에서 보면 정말 '보잘것 없는' 샷에서도 이렇게 카메라만을 이용해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새삼스레 놀라웠습니다.
영화가 2/3 정도 지났을 때 또 한 번 있었습니다. 화면 밖으로 당차게 나가버린 주인공을 카메라가 즉각적으로 따라가지 않음으로써, 1~2초 뒤에 그 인물이 화면 속으로 다시 난입해 하는 행동이 주는 재미를 극대화합니다.
카메라가 진실을 얼마나 감추고 있을 수 있는지, 그에 따라 우리가 얼마나 착각할 수 있는지 이 세 장면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시선 밖에 있는 병운/희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희수/병운이 잊었던 서로에 대한 진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이건 좀 작위적이고 과한 해석인 것 같네요.) 넷플릭스엔 아직 없고, 왓챠 플레이에서 보실 수 있어요. 네이버 기준 1000원에 다운로드 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