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Portrait de la Jeune Fille en Feu>, 2019,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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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제작되어 각종 영화제를 휩쓸고 다녔지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다른 빛을 굳이 화려한 수상실적을 들이댐으로써 흐리게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영화였습니다. 영화관에서 꼭 보고 싶었던 영환데(국내 개봉은 2020년 1월이었어요) 상황이 여의치 않아 놓치고 이제야 보게 되었네요. - 아직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엔 안 올라왔고, 유튜브나 네이버 등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18세기 프랑스. 귀족 집안의 ‘엘로이즈’는 밀라노의 다른 귀족 가문과 결혼하기로 되어있습니다.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주선한 결혼인데, 엘로이즈의 언니는 그런 결혼, 그런 운명을 피하기 위해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고, 그 때문에 ‘엘로이즈’에게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상대방의 얼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해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려줄 화가를 불러야하는 지경이니, 엘로이즈도 결혼이 (당연히) 하기 싫습니다. (첫째 딸의 자살에도 불구하고 이 결혼을 성사시키려는 것을 보면 참 지독한 집안, 지독한 문화입니다.)
결혼을 하는 것, 결혼을 위해 초상화를 그리는 것, 초상화를 위해 포즈를 잡는 것이 모두 싫은 엘로이즈에게는 ‘산책 친구’로 소개된, 실상은 화가인 ‘마리안’. 그가 등장하여 엘로이즈, 엘로이즈의 어머니, 하녀 ‘소피’가 사는 대저택에 함께 머물게 됩니다. 마리안은 엘로이즈와 산책을 하면서 그를 치밀하게 관찰하고, 방에 들어와 몰래 엘로이즈를 그려나갑니다. 서로를 꿰뚫을 듯 깊이, ‘타버릴 듯’ 뜨겁게 응시하는 시선 속에서 마리안과 엘로이즈의 마음엔 새로운 감정이 피어오릅니다.
그 뒤의 자세한 줄거리는 스포일 방지를 위해 말을 아끼겠습니다.

이미 보셨거나 곧 볼 계획이 있으신 분들과 감상을 (미리) 공유하고, 볼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들의 등을 떠밀기 위해 제가 뽑은 특별히 좋았던 몇 가지 포인트만 남기자면:
🪄
오르페우스 신화 영화 중에 오르페우스 신화를 드러내어 언급하며 그 신화에 대한 엘로이즈/마리안/소피의 세 가지 시선을 보여줍니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저승에서 이승으로 다시 올라가는 길에, 그렇게 하면 에우리디케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뒤를 돌아보는 대목에서 소피는 “오르페우스가 대체 왜 그랬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화를 내고, 마리안은 “오르페우스는 연인으로서가 아닌 시인으로서의 선택을 한 것이고, 그렇게 해서 에우리디케와의 추억을 완성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며 변호합니다. 같은 대목을 다시 읽고 난 엘로이즈가 한 마디 덧붙입니다.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에게 부탁했을 수도 있겠다. – 뒤를 돌아봐달라고.”
오르페우스 신화에 대한 은유는 이별의 방법과 시간이 운명적으로 예견되어있는 엘로이즈와 마리안을 지켜보면서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막 꺾어온 듯한 꽃을 두고 자수를 시작한 소피는 그 꽃이 다 시들어갈 때 즈음 아름다운 자수를 완성시키는데, 여러 가지 소재를 이 거대한 하나의 주제의 변주로 해석해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 이 영화를 여러 번 봐보고 싶은 이유!
불과 물, 초록색과 빨간색 대조적이면서 강렬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물과 불, 빨간색과 초록색이 지독하게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미술을 주요 소재로 한 영화인만큼 시각적인 장치에도 대단히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게 느껴지는 작품이었어요.
🎵
음악 몰입을 도와주는 도구로써의 ‘배경’음악이 강조된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 중 두 곡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우선 축제에서 여자들이 불 주변에 둘러서서 부르는 곡은 원시적인 힘을 마음 깊숙이까지 전달하고,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도 나오는데 앞으로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이 영화가 생각나게 될 것 같아요.
🎬
다른 영화와 비교 <아가씨>, <캐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등 ‘퀴어 영화’ 하면 떠오르는 영화들을 보신/보실 분이라면 어떤 공통점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비교해보면서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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