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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미토 후기] 미얀마 봄을 위한 행진, 메타버스 시위대 참여 후기

  • 지금도, 미얀마 봄을 위한 행진 게더타운은 계속 열려있습니다.

힘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함께 가는 길

- 게더타운에서의 미얀마 봄을 위한 행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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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쿠데타가 발발한지 1년이 지났습니다. 흐른 시간만큼이나 미얀마 시민들에 대한 연대와 지지, 관심은 차츰 무뎌지고 외면하는 마음으로 채워졌습니다. 여전히 미얀마를 마음에 품고 있는,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시민들과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메타버스 시위대라는 이름으로 함께 행진했습니다. 미얀마의 봄을 위한 행진, 그 후기를 공유합니다.
 

미얀마는 못 갈 나라가 되었다...

비행기로 가면 네 시간여가 걸리는 먼 나라, 그러나 그렇게 멀지도 않게 느껴지는 나라가 너무 멀게 느껴지는 차원에 들어선 것은 2021년 2월 1일. 그리고 그로부터 1년째 되는 지난 달 7일, 양곤 시내의 한 육교에서 민주주의 현수막을 달려던 20대가 군경의 총에 맞아 숨졌다. 9일에는 군용차에 세손가락을 들고 무언가를 외쳤던 청년이 총을 맞아 숨졌고, 시신은 군경들이 가져갔다.
 
건너들은 뉴스로만도 하루하루가, 말도 안 되고, 어쩌면 저러지 싶고, 끔찍하고, 때론 생각이 멎을 정도로 화가 나고, 그 곳에 있는 이들이 안타깝고 슬프던 것이, 1년씩이나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나를 포함한 한국사회는 많이 무뎌졌다. 그 사이 미얀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이 쌓인 것이 공식적인 집계로만 1,500명을 넘어섰다. 쿠데타 상황과 겹쳐 심각하게 확산중인 코로나19로 공식집계로만 약 2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죽음들과 함께 여전히 살아있는 이들의 고통을 읽어본다. 쿠데타로 마비된 정치와 경제 사회 시스템, 자비 없이 들이닥친 코로나19, 지난 가을 이래 반격한 시민방위군과 쿠데타군의 전투 등등으로 일자리건 학교건 인간관계건 먹거리건, 삶의 행로가 통째로 뒤바뀌거나 불안정해진 삶이,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삶들이 이어진지 1년씩이나 되었다.
 
이번에 국커얼(국제개발협력 커뮤니티 얼라이언스)이 준비한
<미얀마 봄을 위한 행진의 집결장소>는 그 미얀마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였다.
미얀마 봄 게더타운 내 ‘쉐다곤파고다 광장’미얀마 봄 게더타운 내 ‘쉐다곤파고다 광장’
미얀마 봄 게더타운 내 ‘쉐다곤파고다 광장’
 

갈 수 없는 나라, 미얀마에서 만나요!

미얀마의 속속을 지키는 큰 나무들에 둘러싸인 잔디광장에 입장하여 안내소와 방명록 코너를 끼고 위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미얀마의 황금불탑인 쉐다곤 파고다를 만날 수 있다. 미얀마의 상징적인 존재로 많은 미얀마 사람들의 정신적 의지가 되어주는 쉐다곤 파고다는 게더타운으로 구현된 컴퓨터 상에서도 금빛으로 환히 빛나고, 또 한 화면에 들어오기 버겁게 크다.
 
쉐다곤 파고다의 첫째 문으로 들어가면 미얀마 민주화 갤러리로 연결된다. 이곳에서는 지난 1년 동안의 미얀마 민주화 운동 사진을 볼 수 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싸우고 밟히되 꺾이지 않는 사람들을 화면으로나마 오롯이 맞이할 수 있다.
(안내를 따라 전체화면으로 설정하고 사진들을 보시기를 추천한다.)
해외주민운동연대 ‘피어나라 미얀마’ 전시해외주민운동연대 ‘피어나라 미얀마’ 전시
해외주민운동연대 ‘피어나라 미얀마’ 전시
 
미얀마 봄 게더타운 내 ‘민주화의 길’미얀마 봄 게더타운 내 ‘민주화의 길’
미얀마 봄 게더타운 내 ‘민주화의 길’
쉐다곤 파고다의 둘째 문은 미얀마 민주화의 길로 나있다.
미얀마와 한국, 나란히 난 길 양옆으로 군부의 탱크와 군사시설, 국민통합정부 건물, 아세안 본부와 병원, 불타는 건물,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제단과 포스코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참가자는 이 풍경 사이를 천천히 누비며 쿠데타 1년을 돌아볼 시간을 가진다. 미얀마 쪽 발자국을 따라가면서 미얀마의 그간 1년을, 한국 쪽 발자국을 따라가면서는 한국의 그간 1년을 동영상과 기사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쿠데타 1년, 그럼에도 이어져오는 ‘사람의 길’

이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 가상공간을 거닐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여전히 쿠데타는 계속되고 변한 것은 없는 것 같은 그 1년 동안에도, 미얀마와 또 멀리 떨어진 한국의 수많은 사람들은 같은 방향을 보며 움직여왔고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미얀마 국민통합정부가 구성되던 3월, 한국에서는 불교계와 시민사회가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오체투지를 했고, 시민들은 세손가락 인증샷을 모았다. 미얀마 국민통합정부가 시민방어군을 창설했던 5월, 한국시민사회는 포스코와 한국가스공사에 군부와 관계를 단절하라 촉구했다. 9월에는 유엔에 국민통합정부를 인정하라는 1만명 엽서보내기 운동이 벌어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 곳곳에서 자행되는 세상에도, 그래도 세상은 사람 사는 곳이라고,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자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왔다.
 

서로가 서로의 다리가 되어, 미얀마 봄을 위한 행진

2월 10일 목요일 저녁 7시 반,
게더타운의 쉐다곤 파고다 광장에서 미얀마 봄을 위한 행진에는 40여명의 한국과 미얀마 시민들이 함께했다. 미얀마 국기 색인 노랑, 초록, 빨강에 맞춰 옷을 차려입은 시민들은 함께 미얀마 국기 위에서 사진을 찍고, 헌화대 앞에서 희생자들을 함께 추모하고, 한국의 포스코 건물 앞에서 시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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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반, 참가자들은 쉐다곤 광장에서 벌룬을 타고 희망의 섬으로 이동해 한국에서 활동하는 행동하는미얀마청년연대(이하 YAM)의 헤이만씨과 슌씨와 대화모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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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유학 또는 일을 하고 있던 미얀마 청년들이 쿠데타 사태를 한국에서 접하고 자신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활동을 시작한 것이 YAM의 첫 활동이었다. "한국에서의 연대활동을 미얀마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하는 참가자의 질문에, 헤이만씨는 알고 있다고, 힘이 된다고 했다. 이런 자리들이 자신의 활동을 지속해가는 데 힘이 된다는 그의 말에, 진행을 맡은 국커얼 멤버는, 헤이만씨같은 분들 덕에 자신들이 오히려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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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는 길

작년 8월부터 세 차례, 국커얼에서는 한국 청년 활동가, 미얀마 청년 활동가, 미얀마 역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온라인 미얀마토크를 준비했었고, 한국과 미얀마, 미국, 베트남, 태국 등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이번 행진은 그간의 미얀마토크를 정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혼자서 화내고 슬퍼하고 고민하던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모여서 얘기하고 행진하고 또 얘기했다. 답은 없었다. 미얀마 상황을 짠하고 바꿀 정답은 없었고, 그건 아마도 내내 없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나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너무 무력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무력한 한 사람도 때로는 한 사람의 세계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아주 미력한 행동이나마 캄캄한 어둠에 있는 이들에게는 따뜻하고 밝은 촛불이 되어줄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미력하나마 계속 기억하고 무언가라도 하자는 의지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갈 용기를 얻어갈 수 있었다. 사람이 길을 가는 힘은 때로는, 또는 대부분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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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커얼 준비팀들이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며 진행하느라 처음 계획보다 늦게 개최된 이번 행사에도, 잊지 않고 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들의 미력함이 서로 엮여 각자가 계속 갈 다리가 되어주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지라도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지는,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살고 싶다는 의지는, 그 미력함들 덕에 먼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봄이 올 때까지.
 
  • 지금도, 미얀마 봄을 위한 행진 게더타운은 계속 열려있습니다.
  • 그리고 여전히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경제적 지원이라고 합니다. 후원은 해외주민운동연대(KOCO)를 통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