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카탈로그 시리즈'의 역자, 조기현 인터뷰

4월 16일(금) 삼호미디어에서 'MSX&재믹스 퍼펙트 카탈로그'가 출간된다. 시리즈의 8번째 국내 정식 출간 서적이며, 역자인 조기현 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이 책을 "한국의 MSX와 재믹스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최초의 책을 목표로 작업하였다.", "(좋은 의미로) '미친 책이 나와버렸다'라는 소리를 듣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MSX&재믹스 퍼펙트 카탈로그의 가장 큰 특징은 원서인 ‘MSX 퍼펙트 카탈로그’에 더해 재믹스가 타이틀과 표지를 장식했다. 이러한 이유를 역자인 조기현 씨는 “8~90년대 동시대를 살았던 한국의 올드게이머들에게는 아무래도 ‘MSX'와 함께 '재믹스'가 강하게 와닿을 수밖에 없기에” 판단했으며, “실제로 책의 정보가 공개되고 나면, 책 제목을 변경한 이유도 납득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원저자인 마에다 히로유키(前田 尋之) 씨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금성 FC-800, 대우 IQ-1000과 재믹스 V, 삼성 SPC-800 등 한국에서 발매된 MSX에 대해 대량 가필된 스페셜 버전”이라고 국내 출간본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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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발매되는 'MSX&재믹스 퍼펙트 카탈로그'의 표지
엄밀히 따지면 MSX는 컴퓨터이지 게임기는 아니다. 하지만 퍼펙트 카탈로그 시리즈 자체가 게임을 메인으로 진행된 만큼 원서인 MSX 퍼펙트 카탈로그도 게임에 집중했으며, 그렇기에 재믹스의 추가가 어색하지 않다.
나는 미리 이 책의 전체 내용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진행된 국내 정식 퍼펙트 카탈로그 중 최대의 볼륨인 것도 그렇지만, 이번에는 오리지널 페이지가 32페이지나 된다는 것에 놀랐다. 발매 당시의 시대 상황과 국내에 발매된 MSX 및 재믹스 모델 전종, 주변기기, 소프트웨어까지 총 망라하였다. 원서를 옮긴 부분 역시 한국판에서는 보다 국내에 맞게 수정된 부분도 있다.
분명히 이 책을 나중에 구매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오리지널 페이지의 첫 장부터 빡빡한 텍스트의 홍수에 기쁨의 비명을 지를 것이다. 이 정도로 한국의 MSX와 재믹스 이야기를 정리한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는, 역자가 원한대로 미쳤다는 말이 자연스레 입에서 튀어나왔다. '월간 게이머즈'의 수석 기자이기도 한 조 씨는, 게이머즈 2020년 4월호에서 12페이지를 할애하여 '대우 MSX의 아버지' 강병균 씨 인터뷰를 수록하는 등, 평소 한국 게임 사에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결과물을 전달한 그의 내공이 십분 발휘된 페이지다.
이 글을 적는 시점에도 한국 게임의 아카이빙 작업은 업계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아니며, 뜻있는 개인들이 직접 사비를 털어 자료를 수집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들의 노력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도 현실, 그러나 이 작업은 자료의 보존 차원에서라도 분명히 필요하며, 학계와 업계의 지원이 절실하다.
IGN은 직접 조 씨를 만나, 지금까지 퍼펙트 카탈로그의 작업 과정과 한국판 오리지널 페이지를 만들게 된 계기, 한국 게임 아카이빙의 현주소와 향후 목표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퍼펙트 카탈로그의 지금까지 이야기

처음 퍼펙트 카탈로그 작업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에 대해, 조 씨는 "직업상 밥 먹듯 하는 일이 일본책 독서와 일본어 독해/번역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본의 괜찮은 게임 관련서를 한국에 번역 소개하는 일을 해볼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딱히 전문 번역가도 아니고, 한국 출판계에서 비디오 게임 관련서는 그다지 시장성이 없는 탓도 있고 해서 무시되기 일쑤라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일본 게임서를 오랫동안 구입/일독하고 있다 보니 대략 2010년대부터 소소히 나오고 있던 레트로 게임 관련서들도 보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가정용 게임기 흥망사(家庭用ゲーム機興亡史)' 등 마에다 히로유키 씨의 저서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컨셉에 흥미를 느낀 조 씨는 2018년 5월 일본에 발매된 '메가 드라이브 퍼펙트 카탈로그'를 즉시 구입해서 보고, 이 책은 한국어판으로 내면 반응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와 '번역은 내가 할테니 판권을 가져올 출판사가 없을까'를 수소문해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과거에도 몇몇 출판사와 상담해봤으나 시큰둥한 반응만 얻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마침 지인으로부터 "자신의 친구인 출판사 사장이 이 책에 관심이 있어 판권을 알아보고 있다"라는 연락을 들어, 바로 접촉하여 2018년 여름부터 제작에 착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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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호미디어를 통해 출간된 첫 시리즈인 '메가드라이브 퍼펙트 카탈로그' 이 책의 일본 출간 에피소드는 저자인 마에다 히로유키(前田 尋之) 씨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말 등의 자투리 시간을 빼 틈틈이 번역하였고, 대략 12월쯤 되자 초벌 번역이 90%쯤 진척되었을 때 해당 출판사가 에이전시와 트러블이 생겨 판권이 공중에 붕 떠버렸어요. 정식 발표조차 못한 채로 번역도 없던 일이 되어버리게 생긴 상황이었죠. 다행이 그 출판사 사장님이 책임지고 뒷일을 마무리해주셔서, 마침 레트로 게임 서적 출간에 의욕적이던 담당자가 계셨던 삼호미디어와 연결되었어요. 그 사장님께는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이 없었더라면 이 책은 결국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2019년 여름. 삼호미디어가 판권을 정식 구입하는 형태로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되면서, 비슷한 시기에 '메가 드라이브 미니'가 국내에 9월 출시를 확정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9월 메가 드라이브 미니 발매에 맞추자'라는 형태가 되었고, 시기적으로 몇 달 안 남은 상황이었기에 번역의 강행군도 다시 시작되었다. 여기서 그는 오리지널 페이지를 생각했으며, 초기에는 별도의 장이라기보다 추가 페이지 부록의 느낌이었다고 한다.
"이 당시 타사에서도 유사 서적이 나왔었기 때문에, 어떻게 차별화할지가 고민이었어요. 이 책이 잘 될지 어떨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시리즈화는 아예 생각조차 못했고, 이 한 권으로 끝나더라도 후회가 없도록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고 생각해 내놓은 추가 기획안이 '한국의 사정을 담은 오리지널 페이지' 기획안이었죠. 다행히 일본의 원 출판사와 마에다 씨가 OK해주었고, 마침 게이머즈에서 '국산 8비트 카다로그'라는 연재지면으로 수퍼겜보이를 다룬 적이 있었으므로 필요한 중요 자료는 대부분 보유중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OK가 뜨자마자 바로 빨리 만들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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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현(44). 1977년 서울 태생. 초등학교 때 친구 집에서 금성 FC-150과 패미컴을 처음 접했고, APPLE Ⅱ+ 호환 기종으로 컴퓨터에 입문했다. 중·고교 시절을 16비트 PC 게이머로 보낸 후 플레이스테이션을 접하며 가정용 게임기 유저로 전향, 게임으로 영어와 일본어 독해법을 익혔다. 이후 2002년부터 현재까지 (주)게임문화의 월간 GAMER'Z 수석기자로 재직 중이다. 8~90년대 한국 게임 초창기의 궤적을 텍스트로 복각해보고 싶어 한다. 저서로는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감수로는 '페르시아의 왕자 : 개발일지'와 '여신전생 페르소나 3·4 공식설정화보집', 'PC엔진&PC-FX 퍼펙트 카탈로그'가 있고 역서로는 '메가 드라이브 퍼펙트 카탈로그', '슈퍼 패미컴 퍼펙트 카탈로그', '세가새턴 퍼펙트 카탈로그'가 있다.
이렇게 해서 메가 드라이브 미니의 발매일과 같이 나온 메가 드라이브 퍼펙트 카탈로그는, 다행히 비교적 좋은 반응을 기록하여 시리즈 화가 결정되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우리가 '세가 새턴 퍼펙트 카탈로그'의 발매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여전히 판매량은 이전 판매량 따라 다음 출간 여부가 결정되는 상황이다.
나는 지난 퍼펙트 카탈로그 기사에서, "퍼펙트 카탈로그는 국내 정식 출간 전부터 내가 구매하고 있던 3개의 시리즈 중 하나였으며, 다른 서적들보다 이 시리즈가 강점인 것은 해설이 가장 충실한 점인데, 고민 끝에 구매할 가치가 있다고 선택했다"라고 말했었다. 조 씨에게도 순수한 독자 입장에서의 인상을 물어보었다.
"일단 하드웨어에 대한 테크니컬한 설명과 당시 시대상에 대한 부가설명이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레트로 게임 관련서는 일본에서도 대부분 수집가들이나 민완 게임 라이터들 중심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전문적인 설명이 적고, 특히 '왜 이 게임기는 이런 기술과 설계를 선택했는가' 등에 대한 내용이 매우 부족한 편인데, 퍼펙트 카탈로그는 마에다 씨 자신이 90년대에 컴퓨터잡지 편집자와 게임 개발자 경력을 거쳤다 보니 이 부분에 큰 강점이 있고, 이것이 동종의 다른 책에는 없는 큰 차별점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인도 우수하고, 잡지 편집자의 책답게 내용의 구분과 의도도 확실한 편이고요. 그리고 마에다 씨의 책 전반에 일관되는 방향성인데, 게임과 게임기를 함부로 험담하지 않아요. 오래전부터 일본의 레트로 게임 관련서를 읽다 보니 가장 눈에 거슬렸던 풍조가 제멋대로 바보 같은 게임이니 쓰레기 게임이니 하면서 해당 게임을 만든 사람과 이를 재미있다고 즐겼을 게이머들을 신랄하게 비웃는 이쪽 특유의 문화인데, 마에다 씨의 책에는 그런 자의적 악평을 최대한 자제하고 어떤 게임이든 일단 기본적인 존중을 주면서 나름의 의의와 가치를 부각해주는 '점잖음'이 있습니다. 일본의 레트로 게임 관련서에서는 의외로 찾기 어려운 미덕이라고 생각하기에 번역할 때도 이를 유념하고 있어요"
문득, IGN에서도 일본인의 글을 옮길 때 고민 중 하나인 일본 특유의 표현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국에서 게임 마니아라면 일본식 표현에도 친숙할 테지만, 일반적으로는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자주 보이는 반응도 이러한 일본 게임 번역서에서 줄곧 따라다니는 평이기 때문이다. 조 씨는 오랫동안 영어/일본어 번역서를 읽다 보니 느꼈던 독자 입장에서의 문제의식이나 아쉬움이 많았고, 어쨌든 '번역자'가 된 이상 그 문제의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위치에 섰으니 소신대로 해보자는 방향성을 세웠다고 한다.
"기본적인 방향성은 '독자의 기준점을 게임 지식이 많지 않은 일반적인 한국인에 두고, 그런 사람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읽고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어쨌든 오랜 게이머이다 보니 부족함이나 놓치는 것도 많고 어쩔 수 없이 게임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방향성은 계속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이른바 '일본어투'를 최대한 한국어에 맞게 순화하는 것도 그 일환으로, 일본어문의 특징인 피동형이나 호칭, 의태어, 특정한 지칭(대표적으로 '해외') 등은 그대로 옮기면 한국인 독자 입장에서 어딘가 껄끄러워지기 십상이므로, 이를 사전에 최대한 잡아내려 노력했고, 일본어 원문을 아는 입장에서, 번역문에서 원문이 역으로 읽히지 않게 된다면 성공이라 생각한다고 조 씨는 설명을 이어갔다.
"사실 원서부터가 제한된 공간에 텍스트를 채워 넣는 식이다 보니 한국어로 바꾸면서 부득이하게 축약하거나 생략하거나 개조하는 경우도 적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원문에서 너무 멀리 가지는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고는 있습니다. 번역하며 소화가 되지 않는 부분 등이 있을 경우엔 직접 마에다 씨에게 메일로 질의하여 의도를 듣고 반영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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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X&재믹스 퍼펙트 카탈로그' 페이지 중 하나. 제한된 텍스트 내에서 많은 고민 과정을 거쳤다.
이미 한차례 기사에서도 언급한 타이틀의 번역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특히 80~90년대 게임은 일본 표기로 한국에서 많이 불렸거나, 음역이 그대로 정착되는 등, 그 기준이 올바르지 않은 부분이 많다. 이에 대해 조 씨가 세운 대원칙은 '기존 통념상의 명칭은 잠시 잊고 모두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본다'와 '세월이 충분히 지났고 우리도 원어 제목을 이제 알고 있으니, 올드게이머들 사이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더라도 의미적으로 명백히 틀린 명칭은 바로잡는다'였다. 메가 드라이브판의 '상어! 상어! 상어!'와 '배틀마니아 다이긴죠'가 대표적인 경우. 이번 MSX판 역시 하나의 예로 코에이의 '랑프뢰르'가 고민거리였는데, 한국에선 보통 '랑펠로'로 통하지만 명백히 틀린 명칭이기에, 이걸 정하기 위해 원 단어의 IPA 표기와 불어 외국어표기법까지 뒤졌다고 한다. 일본어 특유의 외래어 발음 표기의 경우, 기본적으로 제작사가 병기한 영어 제목을 참고하여 표기를 정하기도 했다.
"일률적으로 기준을 통일하기에는 애매한 부분도 많아서, 기본적으로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 의미적으로 원 타이틀명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고 이미 널리 통용되는 익숙한 명칭일 경우에는 이를 존중해 그대로 간 경우도 많아요. MSX판이 특히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갤러그', '남극탐험', '빵 공장', '양배추 인형' 등..."
다만 만화/애니메이션 판권물이나 현재 국내에 정식발매로 소개되고 있는 작품의 경우에는 최대한 국내 소개 당시의 명칭을 존중해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애초에 판권물 게임의 발매 의도가 원작의 팬에게 어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작 만화를 알고 있는 사람이 책을 뒤적거리다 '이 만화가 게임으로도 나왔네!'라고 발견해주는 것을 의도한 것. 특히 판권물의 원작은 현재 복간판이나 애장판 형태로 재소개된 작품들도 많아, 이를 일일이 검색해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GS 미카미'는 과거엔 '고스트 스위퍼'로 소개됐기에 이를 계속 따라갔는데, 작년 11월에 애장판이 'GS 미카미'로 나왔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이러한 경우는 한번 정해진 건 어지간하지 않는 한 계속 통일시키려 하므로 초기 표기를 가급적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원칙에 어긋나더라도, 원 판권사에 의해 공식 소개된 명칭이 확립된 경우엔 그쪽을 우선했습니다. 메가 드라이브의 경우 '판타지 스타'나 '혼두라', '스트라이더 비룡' 등이 이런 이유(메가 드라이브 미니 수록 명칭)로 통일됐고 계속 가고 있어요. 이게 아니었으면 아마 '판타시스타'와 '콘트라', '스트라이더 히류'가 됐을 겁니다."
"다만 이건 좀 명확히 하고 싶은 것인데, 이 시리즈에서 채택한 명칭은 어디까지나 번역자 입장에서 게이머 대중에게 하는 제안과 비슷한 것으로, 제 입장에서야 최선을 다한 것이지만 '이것이 옳다'고 내세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시리즈 내에서 일관하는 표기일 뿐이에요. 본서의 색인에서 번역 타이틀명과 원 일본어 타이틀명을 같이 적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원어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갭은 헤아려주셨으면 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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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스타'의 발음 문제는 과거 서양에서도 팬임을 증명하는 요소로 쓰이기도 했다. 지금은 "판타시로 부르기를 원하면 애초 'Phantasy'로 표기하지 말았어야지" 목소리가 더 높아져 사라진 에피소드.

한국 게임 아카이빙의 현주소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퍼펙트 카탈로그 시리즈만의 특징인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는 오리지널 페이지로 넘어갔다. 사실 이 페이지가 아니었다면 이처럼 기사를 쓸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 가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조 씨에게 앞서 타사 경쟁서와의 차별점으로 기획된 부분의 설명에 더해, 조금 더 당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개인적인 관심사나 평소 모아오던 자료들과도 일치되어서 빨리 만들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어차피 결국 한국인이 읽을 책인데, 일본 사정만 담고 끝나는 것은 좀 아깝지 않은가? 마침 내가 이 부분은 보충할 수 있으니 직접 써본다'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사실 번역서를 내면서 이렇게 한국 오리지널 내용을 멋대로 추가해 넣는 건 좀 주제넘은 시도이기도 해서, 메가 드라이브 퍼펙트 카탈로그 때는 '원 출판사가 설마 허가해줄까'라는 생각도 했었고요. 예상외로 원 출판사 및 마에다 씨가 모두 OK 해주셔서 없는 시간을 쪼개 급히 만든 지면이고, 그렇다 보니 메가 드라이브 퍼펙트 카탈로그는 원서 뒤의 부록이라는 형태가 되었어요. 국내 하드웨어 설명 페이지가 생기고 본격적인 '추가 장' 형태로 덧붙은 건 조금 여유가 생긴 PC엔진 때부터죠. 이젠 어쩌다 보니 이 시리즈의 정체성 내지는 전통 비슷하게 되어버려 그만둘 수가 없게 되어서... 사실 계속될수록 다른 소장가분에게 부탁해 대여하거나 자료를 조사하는 등으로 품이 꽤 들어가고 있는데, 가끔은 왜 사서 이 고생 거리를 만들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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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씨가 계속 한국 오리지널 페이지를 만들면서 추가된 개인적 목표라면, '나중에 퍼펙트 카탈로그 프로젝트가 모두 끝났을 때 이 오리지널 페이지들을 모두 쭉 읽어보면 8~90년대 한국 게임계 풍경을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주마간산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이다.
"사실 오리지널 페이지에 있는 내용은 딱히 새롭거나 신선한 게 아니라, 적어도 나와 엇비슷한 세대라면 당연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시절 얘기예요. 하지만 이제는 이런 것도 일부러 활자와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으면 언젠가는 잊혀지고 부정당할 수도 있을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신뢰성 있는 기록을 쌓아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게임의 역사나 아카이빙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왜 이런 것에 게이머들이 관심이 없는가? 유물과 소장품은 있는데 정작 이걸 책으로 엮는 사람이 없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기도 해서 소소한 취미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여오던 사안이기는 하지만, 이게 제 개인 수입으로는 어림도 없는 돈과 자원이 들어가니 그저 '분수 안에서' 소소하게 하는 정도예요. 개인적으로는 굳이 제가 다 사들이고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으니, 많이 가지신 분이나 박물관/진흥원 같은 데에서 도와주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자료 수집과 관련하여, 마에다 씨가 이해심 있는 주변 수집가의 협력이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한 만큼, 조 씨 역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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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는 개인 보유 중인 자료와 잡지를 먼저. 그다음이 인터넷 검색. 가장 큰 도움은 개인적으로 고전 컴퓨터/게임 잡지 검색 DB를 구축하신 오영욱 씨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특정한 사실이나 날짜를 확정할 때, 혹은 지면/광고 발췌 시 등에 큰 도움을 받고 있고,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대여와 사진 촬영 등은 국내 레트로 게임 동호회 회원분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데,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특히 대여받는 것이 매우 힘든데, 이 과정에서 신뢰를 쌓아 대여받은 소장품에 책임을 지고 이상 없이 돌려드리는 것을 우선시하고 있어요. 물건을 직접 대여받기 힘든 경우나 사진 자료가 필요할 경우에도 최대한 게재 허락을 받을 수 있다면 받고, 기여도가 클 경우 책의 기여자 목록에 올려드리는 등으로 노력하고 있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퍼펙트 카탈로그 발간 이전부터 몇몇 레트로 게임 동호회에서 소소하게 오프라인 활동에 참여해온 게 후일 대여나 제공을 부탁드릴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서 잠깐 언급한 대로, 한국 게임 아카이빙 작업은 업계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아니며, 뜻있는 개인들이 직접 사비를 털어 자료를 수집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연스럽게 게이머즈 2020년 4월호의 강병균 씨 인터뷰 기사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그 인터뷰를 읽고 당시 활동하던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이 문제로 더 늦으면 안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현재 한국 게임 아카이빙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문제가 있다면 무엇부터 선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현재 상황을 "문제가 있는 수준이 아니라 도처가 전인미답의 영역"이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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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씨의 인터뷰가 있는 게이머즈 2020년 4월호 표지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하겠네' 같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고 할까요? 유물이나 소장품은 아직 많은데 이게 딱히 조직/연계되어 있지도 않고, 책임지고 관리하는 사람도 적으며, 이걸 이야기나 텍스트로 엮어내는 사람은 훨씬 더 적어요. 하지만 이것이 정리되지 않으면, 세계의 누구도 한국의 게임이 이런 과정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한국이 특별히 늦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일본이나 미국도 이제 구체화되는 수준이예요. 다만 조금 더 지나가면 메울 수 없는 차이가 나오기 시작하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일본/미국은 오래전부터 민간 차원의 DB가 충분히 쌓여있었기에 앞으로가 기대돼요."
개인적으로 열심히 정리한다고 딱히 누가 돈이나 명예를 주기는커녕 알아주지도 인정해주지도 않는 외로운 작업이라는 게 제일 이러한 시도가 적은 이유라고 생각한다는 조 씨는, 박물관이나 진흥원 등이 이쪽에 좀 관심과 예산을 준다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몇 년 전 김갑환 회장이 노환으로 별세하시기도 했고, 과거 90년대나 2000년대 국내 게임 업계에서 활약하시던 분 중에도 이미 현업을 떠나셨거나 별세하신 분이 의외로 적지 않아요. 뜻있는 분들이 이들의 행적과 당시 시대상을 정리하고 증언을 텍스트화해두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강병균 선생님의 경우, 소재를 파악하고 연락이 닿기까지는 운도 많이 따라준 다행한 경우이고, 나름 계속 찾고 있긴 하나 항상 이렇게 홈런을 노리기가 힘든 게 사실이에요."
"사실 업계와 학계도 이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하나,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어요. 특히 주류인 온라인/모바일 게임과는 달리 업계/학계의 관심사에서 보통 벗어나기에 십상인 콘솔 게임, 90년대 PC게임, 아케이드 게임 쪽이 이런 경향이 훨씬 심한데, 이쪽은 결국 당시를 기억하는 게이머들이 모여 알아서 체계화/정리하고 책을 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개인적인 관심사 바깥의 영역이긴 하나, 2000년대 초순의 온라인 게임과 피처폰 게임도 슬슬 아카이빙과 역사 정리에 나서는 흐름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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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씨가 참여했던 '한국 게임의 역사'. 한국 게임이 세계에 발전 과정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기록 작업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조 씨는 퍼펙트 카탈로그를 위해 지금까지 1년 반의 개인 시간을 모두 사용했다. 이같이 장기간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는 동기부여에 질문하자, '하고 싶으니까'라는 단순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토니 모리슨의 명구인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무도 쓴 적이 없다면, 네가 써야 한다'가 지금 제 상황과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요. 마침 쓸 수 있으니 그냥 내가 쓴다...라는 감각입니다. 사실 전 포기가 빠른 성격이라, 제 여력이나 깜냥으로 쓸 수 없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겁니다. 어쨌든 독신이다 보니 가능한 짓같기도 하고요. 개인 자유시간이 거의 대부분 이 책 관련으로 빨려든 지 벌써 1년 반쯤 되어서 조금 아슬아슬한 느낌은 있어요. 다만 이 시리즈를 필요로 하는 독자가 그만큼 늘어난다면, 보람은 있는 일이죠. 책이 더 유명해지고 더 팔려서 제 생활에도 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싶긴 합니다. (웃음)"
"교정도 보고, 오리지널 페이지 기획/집필도 하고, 소장자 섭외도 하고, 원작자에게 질의나 소통도 하고, 직접 홍보글도 올리는 등... 사실 일반적인 번역자보다는 좀 더 판을 넓게 벌린 느낌이라 이미 부업의 단계를 넘어서서 뭔가 본업을 두 개 하는 느낌도 있어요. 이걸 다 허용해주는 회사와 동료들에겐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도 결국은 책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고, 책을 사 읽는 사람이기도 해서 매우 동의합니다. 다만 책이 세상에 필요한 물건이라는 '당위'와는 별개로, 책이라는 물건, 정확히는 '텍스트'의 '상품성'이 계속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는 느낌은 있어요. 텍스트로 얻는 것과 인터넷/유튜브로 얻는 것의 차이점과 성질에 대해 무감각해져 가는 풍조가 더욱 심해지면, 책의 미래, 그리고 텍스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나름 텍스트 애호가로서 종종 들게 되는 상념입니다."
너무 진지한 이야기가 계속 오갔기에, 분위기를 전환할 겸 투자가 될 때 어떤 책을 만들어보고 싶은지를 물었다. 조 씨의 답변은, 그가 아직 이 분야에 관해 탐구하고 싶은 생각이 많은 것을 대변했다.
"투자가치나 상품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서 문제이기는 하지만, (웃음) 요즘은 '90년대 한국 게임 음악 음반 명감'이나 'FM 음원 이야기', 80년대 8비트 컴퓨터 시대 혹은 90년대 DOS 시대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의 책이 나올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퍼펙트 카탈로그 시리즈의 초기 한국 게임기 역사를 다시 재편집해 하나로 묶어본다던가, 플레이스테이션 2 시대의 국내 정식발매 역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본다던가 하는 아이디어도 있어요. 다만 어느 것이나, 저 혼자서는 역부족이고 외부적인 도움이나 자료제공이 필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게 현실적인 상품성을 가질 수 있겠느냐도 문제겠지요."
마지막으로 글을 쓰는 입장에서 모두 가지고 있는 '남기고 싶은 욕심'에 관해 물었다. 그가 생각하는 이 활동의 엔딩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쓰고 싶거나 내고 싶은 건 항상 있지만, '과연 이걸 누가 읽고 싶어 할까?'나 '과연 이런 책을 만들어줄 / 사서 읽어줄 사람이 있을까?'에서 막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 니치한 취미계에 몸담고 있는 저술자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라 생각해요. 퍼펙트 카탈로그는 다행히 모든 것이 여러 도움과 행운 끝에 잘 풀린 경우였다고 생각하기에, 수요가 있고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계속 이어가보고 싶어요."
"자료를 모아 그 자료에 해석과 가공을 덧붙여 글로 내놓는 2차 창작을 어쩌다 보니 오랫동안 직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항상 문제는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자료의 부족입니다. 산재한 소장가들이 소중한 소장품을 신뢰할 만한 연구자에게 내줄 수 있는 환경이나, 자료나 유물을 책임지고 보존하며 파악하고 대출해주는 보존단체 내지는 시설,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권리관계를 해결하여 온/오프라인으로 일반인들에게 열람 제공하는 서비스/DB 같은 게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건 개인의 힘으로는 거의 바라기 힘들고, 결국 업계와 학계와 부처가 관심을 주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그런 체계가 갖추어진다면, 저도 모아온 물건들을 전부 그런 데 맡기고 제 짐을 줄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