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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들어주었어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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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지치거나 힘들 땐 습관처럼 그림책을 펼쳐봅니다. 뭔가 새롭고 특별하고 놀라운 일을 꿈꾸다 와르르 모든 게 무너져버렸을 때, 우리는 낙심하고 속이 상합니다. 주인공 테일러가 그렇습니다. 테일러는 자그마한 나무블럭으로 새롭고 특별하면서도 놀라운 작품을 꿈꾸며
한 조각 한 조각 나무 블럭을 쌓아갑니다. 그러나 난데없이 새들이 날아들어 그동안 정성들여 쌓아놓은 나무 블럭을 와르르 무너뜨리고 말아요. 모든 게 무너져 버린 뒤 무거운 마음으로 울먹이고 있을 때, 친구들이 한명씩 다가와 테일러에게 말을 건네요. 참견하기 좋아하는 친구는 무슨 일이냐며 아프게 캐묻고, 화가 난 다른 친구는 소리치며 화라도 내라며 윽박지르고 또 다른 친구는 와르르 무너지기 전의 모습을 떠올려보라고도 합니다. 그 무엇도 내키지 않을 때, 와닿지 않은 방식으로 조언들을 건네요. 어떤 친구들은 대수롭지 않은듯 웃어넘기라고 하고 그냥 숨어버리란 말을 쉽게 건네기도 해요. 싹싹 무너진 것들을 치워버리라고 조언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차라리 복수하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모든 친구들의 조언대로 하고 싶지 않은 테일러는 결국 혼자 덩그러니 남아요. 모든 친구들이 그만 테일러 곁을 떠나버리고 말지요. 그 때, 토끼가 다가와 테일러 곁에 가만히 앉아요. 따뜻한 온기를 나누면서 소리없이 가만히요. 그리고는 말없이 모든 이야기들을 들어줍니다. 가만히 가만히요. 그러는 내내 토끼는 테일러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마침내는 테일러가 스스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힘까지 심어주지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제 자신을 말없이 돌아보게 되었어요. 누군가 마음이 무너졌을 때 내 방식대로 참견하려들거나 아프게 캐묻지는 않았는지, 내 곁에 다가와준 고마운 친구들에게 나는 얼마나 살가운 사람이었는지, 쉽게 친구들 곁을 떠나는 사람은 아니었는지를요. 그리고 한 가지를 배우게 됐어요. 누군가 어려운 마음으로 힘들어하고 있거나 괴로워할 때, 친구가 원하는 때에 가만히 들어주는 일만으로도 스스로 일어설 힘을 주는 거라고요. 올 겨울엔 온기가 필요한 사람 곁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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