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한 음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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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낮에는 계속 일하느라 늦은 시간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1일 1문화의 여유 2기의 첫 타자로 나서게 되어 기쁘네요! ☺️ 오늘은 '죽음에 관해 노래한 앨범들'이라는 주제로 3개의 음반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죽음'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사랑'과 함께 모든 종류의 예술에서 가장 많이 쓰인 주제 중 하나죠? 우리는 보통 두려움 때문에 죽음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많은 예술 작품들은 그 두려움을 주제로서 묘사함으로써 죽음이 늘 우리의 곁에 있음을 상기시키려고 합니다. 또, 타인의 죽음이 주는 상실감은 사랑이라는 주제와 맞물려 슬픔의 정서를 이끌어내는 데 많이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죽음은 노래 가사의 서사에서도 너무 많이 사용된 주제이긴 하지만, 한 장의 음반이 통째로 죽음을 주제로 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4~5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죽음이라는 어두운 주제로 채우기 위해서는 앨범을 만드는 뮤지션의 감정이 심연에 가까운 깊은 어둠 속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겠죠. 그런 상태에 있는 뮤지션들은 대부분 좋은 구성을 지닌 앨범을 만들 에너지 자체를 모두 소진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죽음을 주제로 다룬 앨범 중 좋은 것은 극히 드뭅니다. 하지만 일단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한 앨범 안에 모두 쏟아내는 데 성공만 한다면, 그 앨범은 위대한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죠. 오늘은 바로 그런 앨범들, 제가 개인적으로 클래식이라고 생각하는, 죽음을 다룬 세 장의 앨범을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David Bowie - ★ (Blackstar) David Bowie - Dollar Days (Official 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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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는 1960년대부터 활동하여, "Space Oddity", "Life on Mars?", "Starman", "Heroes" 등 수많은 명곡을 남기고, 글램록과 펑크록 등의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대중음악 역사 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 중 하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1960년대 이후 솔로 뮤지션 중 천재성으로는 견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위는 2016년 1월 10일에 세상을 떠났고, 그의 마지막 앨범 <★>(Blackstar)는 그 이틀 전인 1월 8일, 그의 69번째 생일에 발매되었습니다. 이 앨범이 발매되기 전까지 세상 사람들은 보위가 간암 말기로 곧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발매 이틀 후에 발표된 보위의 부고 소식에 모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
앨범의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Tony Visconti)가 밝힌 바로는, <★>는 보위의 스완송(Swan song), 즉 백조가 죽기 전 부른다는 아름다운 노래와 같은 유작이 될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발매 즉시 충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구성으로 극찬을 받은 음악성이었지만, 앨범 자체의 메세지는 발매 후 이틀이 지난 후, 보위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드러났습니다.
1번 트랙 "Blackstar"부터 5번 트랙 "Girl Loves Me"가 주는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 이 앨범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6번 트랙 "Dollar Days"와 빠른 비트의 발라드인 마지막 트랙 "I Can't Give Everything Away"로 이어지는 흐름은, 보위가 예견된 죽음을 두려워하고 슬퍼하다가, 끝내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This way or no way 나에겐 이 길 밖에 없어  You know, I'll be free 알잖아, 내가 자유로워질 거란 걸  Just like that bluebird 마치 저 파랑새처럼  Now ain't that just like me? 저게 꼭 지금의 나같지 않니?  Oh I'll be free 난 자유로워질 거야  Just like that bluebird 마치 저 파랑새처럼  Oh I'll be free 난 자유로워질 거야  Ain't that just like me? 저게 꼭 지금의 나같지 않니?" "Lazarus" 中  
 

Mount Eerie - A Crow Looked at Me "Ravens" by Mount Eerie (official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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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트 이리는 미국의 인디 포크 뮤지션 필 엘버룸(Phil Elverum)의 프로젝트 밴드 중 하나입니다. 엘버룸은 마이크로폰즈(the Microphones)와 마운트 이리 프로젝트를 통해, 실험적인 포크 음악들로 인디에서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뮤지션입니다. 그에게는 뮤지션 아내가 있었는데, 엘버룸과의 첫 아이를 낳고 4개월 후에 췌장암을 선고 받고, 그 다음 해에 죽게 되었습니다.
엘버룸은 아내의 죽음 이후 방황하다가, 아내의 죽음을 통해 겪은 경험과 감정을 사실 그대로 묘사한 앨범을 발매하기로 결정합니다. 엘버룸은 <A Crow Looked at Me>의 가사를 아내의 유품인 종이에 손으로 쓰고, 아내가 죽기 전 사용하던 방에서 죽은 아내의 악기로 연주하여 녹음했습니다. 아내의 죽음을 억지로 잊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오로지 음악으로 모든 괴로움을 승화하기 위한 노력이었을까요? 모든 가사는 아내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뿐이며, 발생한 사실에 대한 심오한 해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아내의 죽음과 관련하여 일어난 일화들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있을 뿐입니다. 
1번 트랙 "Death Is Real"에서는 아내가 죽고 난 뒤, 아내가 죽기 전에 몰래 보낸 소포가 집에 도착하는 일화를 이야기합니다. 그 내용물은 딸이 나중에 학교에 가면 사용할 가방이었고, 그 선물을 뜯어보자마자 엘버룸은 바닥에 쓰러져 울음을 터뜨립니다. 3번 트랙 "Ravens"는 아내와 딸과 함께 셋이서 집을 짓고 살기로 했던 곳에 가서 아내의 유골을 뿌리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일화들 속에서, 엘버룸은 인간의 죽음은 현실이며, 예술의 주제 따위가 아니라고 역설하지만, 그럼에도 뮤지션인 자신에게 슬픔을 분출할 수 있는 방법은 노래하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Death is real 죽음은 현실이야  Someone's there and then they're not 누군가가 있다가 사라지는 일이지  And it's not for singing about 노래로 부를 만한 것도 아니고 It's not for making into art 예술로 만들만한 것도 아니야  When real death enters the house, all poetry is dumb  진짜 죽음이 집 안에 들이닥치면, 모든 시가 다 멍청하게 들려 
When I walk into the room where you were 네가 지내던 방 안에 들어가서  And look into the emptiness instead 너 대신 공허함 만이 가득한 것을 보면  All fails 모든 것이 망가져  My knees fail 내 무릎도 망가지고  My brain fails 내 머리도 망가지고  Words fail 언어도 망가져버려 "Death Is Real" 中  
 

The Antlers - Hospice The Antlers - Epilogue (Official 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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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은 앨범 한 장의 가사가 한 편의 소설처럼 이어지는 서사를 지니는 컨셉트 앨범입니다. 한 편의 뮤지컬을 감상하듯 들을 수 있는 앨범입니다. 디 앤틀러스는 미국 싱어송라이터 피터 실버만(Peter Silberman)의 프로젝트 밴드이며, Hospice는 밴드의 세 번째 앨범입니다. 
앨범은 호스피스 병원에서 일하는 남자 간호사와, 말기 골육종으로 죽음을 앞둔 여자 환자 사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환자는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미칠 것 같은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 괴로움 때문에 소리지르고 욕을 하며 간호사를 원망하고 괴롭힙니다. 환자를 사랑하게 된 간호사는 그 괴로움 속에서 환자를 구원하고 싶어하지만, 환자를 사랑하면 할 수록 환자의 고통과 두려움에 전염되어 스스로가 조금씩 부서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야기는 환자가 죽고, 간호사는 병원을 떠나면서 끝이 납니다. 간호사는 환자와의 추억을 떠올리지만, 괴로웠던 일들만 생각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했던 이를 잊을 수 없음에 괴로워합니다.
실버만은 인터뷰 등에서 가사의 내용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꺼렸고, 어느 정도까지 본인의 경험인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실버만은 이 앨범의 가사가 감정적으로 서로를 학대하는,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만 밝혔습니다. 자신의 괴로움과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게 하는 관계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겪어봤거나, 주위에서 목격한 적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주제를 통해서, 이 앨범은 그러한 관계에서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담담하지만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When I try to move my arms sometimes, they weigh too much to lift  가끔 내가 팔을 움직이려고 하면, 들어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무겁게 느껴져  I think you buried me awake  마치 네가 나를 산 채로 땅에 묻어버린 것 같아 my one and only parting gift  너와 함께 묻히는 게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작별 선물이겠지  But you return to me at night just when I think I may have fallen asleep  하지만 밤에 잠들었다고 생각할 때마다, 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아  Your face is up against mine, and I'm too terrified to speak  네 얼굴이 내 바로 앞에 있어, 난 너무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Epilogue"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