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 소중함에 대하여 < 관찰, 판단, 그리고 살아가기 < 교회와 세상 < 기사본문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어린이날을 맞아 황금연휴가 있었지만 비가 와서 아쉽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비가 필요한 이 땅에 단비가 내려 땅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 봅니다. 지난 월요일은 어버이날이었지요. 그리고 다가오는 주일은 부부의 날이기도 합니다. 사제가 된 후로 가족들과 함께 살지는 않지만, 적어도 1년에 한번은 가족들과 함께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오려고 노력중입니다. 올해의 경우 지난달 조카가 태어나서 동생이 함께하지는 못했고 부모님만 모시고 지난주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어느 시골 공소를 베이스캠프 삼아 이곳저곳 다녔지요. 온천도 가고 산책도 하고 맛집도 찾아보고 나름 재미있는 일정을 보냈습니다. 여행을 다니는 게 꼭 정답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의미가 있기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를 보면 가정에 대한 의미가 점점 더 옅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일부러 그러지 않지만 이 사회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만 같습니다. 입시로 인해 뜨는 해 보며 학교 가고 학원 투어하고 돌아오는 자녀들.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와 집안일에 때론 맞벌이까지 해야 하는 어머니. 아침 혹은 저녁이라도 가족이 함께 모여 밥 한 끼 먹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요즘 본당에 첫영성체 교리를 하고 있는데 적어도 가족끼리 아침, 저녁기도라도 바치고 밥 먹을 때 식사 전후 기도 함께 바치라고 이야기하면, ‘엄마 아빠랑 같이 밥 먹을 때가 잘 없어요’ 하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답이 가벼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교회가 설명하는 가정의 가치는 모두가 되새겨 볼 만합니다.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체험하는 자연 공동체인 가정은 사회의 선익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특한 기여를 한다… 가정 위에 세워진 사회는 개인주의나 집단주의에 빠져드는 것을 막아주는 가장 좋은 보증이다. 가정 안에서 개인은 언제나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 관심을 한 몸에 받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13항) 사랑은 내어 주는 것이라는 삶으로 실천하는 예수님의 모범을 가정이 배우고 실천하기를 바라는 교회는 더불어 "가정은 점점 더 개인주의적 성향을 띠어가는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친교가 꽃피는 장소"이며 "사랑의 무한한 역동성에 힘입어 참된 인간 공동체가 발전하고 성장하는 곳"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기 위해 국가는 가정이 기본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회와 국가에 대한 가정의 우위성"을 강조합니다. 가정은 사회나 국가가 수행해야 할 역할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역할을 하기에 가정이 사회나 국가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가정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214항)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조카가 생겼다고 말씀드렸지요. 동생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어려운 이 세상에서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 것에 용기와 격려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조카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기쁘지만 이 아이가 앞으로 만나야 될 수많은 미래를 생각하며 굳세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과 충실성, 그리고 거기에 응답할 필요성을 배우는 곳은 가정"(210항)이라는 것처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notion imagenotion image
(이미지 출처 = Pixabay)
생활성가 중에 ‘유아세례를 주며’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제가 사목을 하면서 유아세례를 줄 일이 생기면 꼭 떠오르는 노래입니다. 얼마 전 조카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소중한 가정의 가치를 잘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 가정에서 자라나는 미래 세대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의 역할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때 묻은 나의 두 손으로
하얀 네 이마에 물을 붓는다
너를 품에 안은 너의 젊은 부모와
세례를 주고 있는 나는
이미 거짓과 탐욕과
미움으로 오염된 몸
영원히 꽃이기를 바라는 바람마저
부끄러워라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잠든 아가야
눈을 뜨고 우리를 보아라
아직도 우리들은 너에게 줄
평화의 땅 마련하지 못했으니
너의 맑은 눈동자
똑바로 바라볼 낯이 없구나
훗날 네가 부모 되어
너의 아기 품에 안고
오늘처럼 내게 올 때
그때에도 우리들은
아기 앞에서
이렇게 이렇게
부끄러우면 어쩌지
이렇게 이렇게
부끄러우면 어쩌지
유상우 신부
부산교구 우정 성당 사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notion imagenotion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