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미사

 
새벽 혜화동 성당 미사에 참석해 보았습니다. 잘 이해한지 모르겠지만 오늘이 성모님과 관련한 날인 것 같았어요. 인상에 남는 것을 적어 보냅니다. 31분정도 미사가 진행되었고 정해진 틀이 있어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여러번 반복했어요. 신부님께서 전해주신 말씀은 제자들에게 어머니를 맡기신(?) 내용이었답니다.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 분명 성모님은 예수님을 낳았기때문에 그 죽음이 신의 죽음이라해도 자식을 잃어야하는 고통이 있었겠구나... 하며 제가 성모님의 입장을 감히 묵상해보는 시간이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할때 서로 주고 받는 기도가 너무나 제 마음을 울려서 미사 후에 검색해보았습니다. 예수 성심께 천하만민을 바치는 기도 앞부분 생략하고 제가 감동한 기도는 이부분이었어요 주님을 일찍이 알아 모시지 못한 사람도 많고 주님을 알고도 주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주님을 떠난 사람도 많사오니 지극히 인자하신 예수님, 이런 사람들도 다 불쌍히 여기시어 주님의 성심께 이끌어 들이소서. 주님께서는 목자이시니 주님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을 보살피시고 이미 주님을 떠난 사람들은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어 굶어 죽는 일이 없게 하소서. 옹졸한 고집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나 불목하여 갈린 사람들도 부르시어 저희가 모두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한 우리에서 한 목자 밑에 살게 하소서. ... ... 이 세상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주님을 모르는 사람도 있고, 주님을 알았지만 주님을 떠난 사람, 주님 안에 있는 사람등 모두를 위해 기도하는 것, 또 굶어죽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 밥을 굶지 않게 해달라는 육의 기도를 넘어 말씀을 먹지 못해 영이 굶어 죽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로 들려서 마땅히 해야할 기도를 잘 준비된 언어로 주님께 아뢰는 것 같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러한 기도를 한적이 있는지 돌아보게도 되었습니다. 성체를 모시는 시간에는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어요. 나는 하나님자녀인데 내가 성체를 못모실 이유가 없지라고 생각했다가 굳이 행위로 나타내는 것 보다 오늘은 참석자체에 의의를 두자고 생각해서 지켜보았습니다. 오늘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마지막 신부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너무 놀라운 말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울컥하면서 전율(?)했네요. 왜 그런지는 좀 더 생각해보고 정리해서 알려드릴게요 6월입니다. 많은 도움을 구하게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샬롬!!!
아, 오늘 새빅 미사를 다녀오셨군요. 평일 새벽 미사는 저처럼 아침 잠이 많은 사람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 큰 결심을 해주셨네요.
무엇보다 미사에 참례하시면서 느끼신 여러 가지를 진솔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은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
이 링크에 의하면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2018년에 제정하신 기념일로 나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월요일이라는 점은 '하느님의 어머니'(천주의 성모) 마리아가 교회와 여정을 함께 한다는 의미를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지상의 나그네인 교회가 힘이 들고 지칠 때마다 성모님이 걸으셨던 그 길을 되짚어보며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6월은 예수 성심 성월이며, 말씀하신 "예수 성심께 천하만민을 바치는 기도"를 미사 시작 전에 드립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그분께서 우리 때문에 아프시고 걱정하시고 근심하셨던 그 마음을 생각하며 온전히 예수님께 우리를 의탁하게 하는 기도이지요. 말씀하신 부분, 저도 광징히 좋아하는 기도이고요, '한 우리에서 한 목자 밑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상상해봅니다. 여러 사람의 끊임 없는 기도는 주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어떤 때라도 주님의 뜻으로 응답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아담의 범죄라는 가장 큰 악에서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가장 큰 선을 끌어내신 하느님이시니 인간의 오만과 옹졸함으로 빚어낸 참극일지라도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퇴고 중 첨언합니다. 저는 1054년 동서 교회의 대 분열과 16세기의 종교 분열은 가톨릭 교회에도 큰 탓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도 언젠가 자매님과 생각을 나눌 수 있을 듯합니다.)
제가 마시고 있는 이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잊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미사와 전례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미사와 전례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미 몸에 베어 익숙해져 있는 기도문들이, 자매님의 감격과 감동을 들으며 더 많이 다가옴을 느낍니다.
'미사'는 mission의 어원이라고 하네요. 저도, 자매님도, 그리고 미사를 드리는 모든 이는 이렇게 파견을 받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요.
어떤 방법으로 복음을 전할 지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탈렌트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신이 받은 것에 따라 열심히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매님의 편지를 읽고 좀 더 다짐해 보게 됩니다. 그 동안 제가 드렸던 기도와 전례에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자고 말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가톨릭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2천 년 동안 이어온 신앙의 유산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말씀의 식탁에서 주님의 말씀을 받아 먹고, 성찬의 식탁에서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가운데 우리는 또 세상에서 복음을 전할 힘을 얻고 살아가나봅니다. 자매님의 말씀처럼 지금 이 시간에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 먹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지 못하는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이 없도록 하느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저도 자매님 덕분에 부쩍 영적 독서(lectio divina) 시간이 증가하였습니다. 저에게 이런 변화를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여쭈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사실 자매님께서 말씀하신 미사 참례와 기도는 어쩌면 자매님께서 세례를 받기 위해 가톨릭에 입문할 때 겪었던 과정과 다르지 않았을 텐데, 그때와 지금의 '느낌의 차이'가 얼만큼 다른가가 궁금합니다. '어른 입고 예식'을 찾아보시면, "여러분은 하느님의 교회에서 무엇을 청합니까? / 신앙을 청합니다. / 신앙이 우리에게 무엇을 줍니까? /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 영원한 생명은 다른 것이 아니라 참 하느님을 알고,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를 아는 것입니다.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하나하나를 살펴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는지, 그리고 만일 그때와 지금이 다른 느낌이 드셨다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일지가 궁금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실 것이고 그 중에는 말씀하시기 곤란한 부분이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자매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는 부분까지만 얘기해 주신다면 저도 자매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조심스럽게 여쭈어봅니다. ^^
아침 저녁으로 차가운 바람이 스쳐지나갑니다. 이럴 때일 수록 푹 주무시고 건강도 챙기셔요.
또 편지드리겠습니다~ ^^
 
안드레아 선생님께 저는 지적욕구가 강한 사람입니다. 호기심이 많고 그 호기심만큼 알아가는 것 자체에 대한 희열을 사랑한답니다. 후에 자세히 이야기 드릴 일이 분명 있을텐데 저는 한동한 과학에 심취해서 살았었답니다. 과학에 빠져 살때는 당연히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했고 지극히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제 마음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정말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때 저에게는 돈,명예,자기만족감 외에 나머지 것들은 그것이 사람이라 할지라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선하게 행동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머리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죄짓기를 물마시듯 했었습니다. 무슨 죄를 어떻게 지었느냐는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형제님께 고해성사를 하겠다는 건 아니구요. 지나간 일이고 주님께서 그런죄들 때문에 피흘려 돌아가셨으니 함께 나누며 지금의 변화에 감사할 수 있는 것도 그리스도인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저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많은 돈과 누구도 나를 어찌하지 못하는 강함만이 필요하다 생각했던 제인생의 가장 어리석었던 시절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종교인들(기독교,천주교,불교,이슬람교,대순진리,,,,)의 말도 행동도 싫었고 그들의 어리석은 교리들에 대해 트집을 잡기 위한 공부를 아주 열정적으로 했었답니다. 그 시기 도장깨기 다니듯 종교를 알아보는 시간들이 있었고 그 불순한 맥락에서 천주교 교리 공부를 6개월간 하게 된 것 이지요. 일단은 신부님과 수녀님이 저를 굉장히 경계했었습니다. 제 태도가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기셨을 것이고 공격하려는게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받은 인상은 이분들이 잘 모른다는 느낌이있었지요. 사람은 모여 살아야 하고 그럴 수 밖에 없는데 속세를 떠나 스스로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을 하는 불교에서는 뭐든 무(無)의 개념으로 푸는 그런 모호함 때문에 답답해 죽을뻔(?) 했는데 그 다음 찾았던 천주교에서도 그 인상은 전혀 다르지 않았어요. 교리공부의 특성상 많은 분들이 함께 주입식 교육을 받는 시간이었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제 질문은 가급적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저는 그때 정말 이해되지 않는 게 많았어요. 그때는 제가 개신교인도 아니었기 때문에 가톨릭이 큰집이니 일단 큰집부터 알아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큰집인 가톨릭이 너무나 부실하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즈음에 그림자정부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런 음모론류의 책들이 훨씬 그럴듯해 보였답니다. 너무나 부끄럽지만 ‘가톨릭 그거 나도 알아 나 세례도 받았어 교리도 공부했어’라고 말하기 위해 참고 6개월을 다녔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탄즈음에 세례를 받았는데 그때도 아마 미사를 드렸을텐데 저에게 기억에 남는 것이 예쁜 미사포가 갖고 싶었고 대모님께 예쁜 미사포를 선물받아서 기분 좋았던 마음만 기억에 남고 다른 특별한 게 없는 걸 보면 그때 제가 배운 것이 정말 없었고 제 태도도 엉망이었던 게 분명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의 수행을 강조하는 불교와 알라가 신이라 하면서 그것을 완성시킨 무하마드라는 곁가지가 있는 이슬람교는 체계적으로 왜 아닌지 무엇이 잘못인지 잘 말할 수 있는데 가톨릭은 너무나 배운게 없어서 정서적으로 싫은게 더 큰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던 것 같아요. 어쨌든 과학에 빠져있던 제가 바울사도처럼 주님의 극적인 인생개입을 통해 개신교라는 틀을 2015년 6월에 선택했고 그 틀로 새롭게 살아가고 있는 제 마음의 자세와 삶의 전반이 달라진 상태에서 배워가는 가톨릭은 ‘그것이 그러한가’라고 생각하고 따져보며 여러 번 생각하게 되네요. 따지는 것도 물론 한계가 있지만 최소한 열린마음으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바탕이고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제게 지혜를 주십사 구하며 열심히 즐겁게 공부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참여했던 미사자체에 대한 의문도 있고 너무 많은 예배형식에 대한 거부감도 들었지만 그러한 형식이 미사의 형태로 자리 잡기까지의 시간들을 저의 기분과 느낌으로 함부로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미사를 한번 참여했는데 제가 정말 뭘 알까요… 믿음이라는 것은 영적인 것이라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이 꼭 필요하지만 그러한 확신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배움을 통해 점검해야하고 그로 인해 더 깊어질 수 있고 혹은 다른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다는 것 만큼 무서운 것도 없고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을 교만하게 할 수 있으니 정말로 무엇을 어떻게 알고 믿느냐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다시 생각합니다. 어른입교예식을 찾아보았습니다. 세례식때 질문과 대답인 듯 한데 저는 전혀 기억이 없네요. 아마도 위에 적은 내용과 같이 답변할 수 있겠지요. 마음에 동하지 않는 세례식이었기 때문에 질문과 답변도 기억에 없는거지요. 현재는 이것을 보면서 정말 꼭 필요한 질문과 답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개신교에도 수많은 교파들이 있지만 거의 공통된 세례문답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앞에 죄인인 줄 알며, 마땅히 그의 진노를 받아 죽을 수 밖에 없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을 소망있는 사람인 줄 아십니까?"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죄인의 구주이심을 믿으며, 말씀에 따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신 줄 알고 그를 믿으며 그를 의지하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오직 성령의 은혜에 의지하여 그리스도를 좇아 모든 죄를 버리고 그의 가르침대로 살기로 작정하십니까?" "여러분은 이 교회의 다스림과 치리에 복종하고 그 거룩함과 화평함을 이루도록 힘쓰기로 다짐하십니까?" 모든 질문에 “아멘”으로 답하면 삼위일체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가 주어집니다. 결국은 오직예수를 말하고 있고 천주교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하기까지 하네요 ^^ 앗… 안드레아형제님께 답장을 하고 있는 지금 시간이 무려 저녁 11시 30분을 넘기고 있는데 안승준선생님께서 술을 드시고는 전화를 하셨어요. 친구 3명이랑 술자리를 했다는데 제 느낌에는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아, 주말동안에 안승준선생님과의 거리두기에 변화가 좀 있었어요. 이미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친구(?)로 잘 지낼 준비가 되셨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무슨 정리가 이렇게 빠른가 했는데 속도와 입장의 차이가 있었더라구요. 같은 시간 같이 대화했는데 얼마나 느끼고 생각하는게 다른지… 서로 잘 모르니까 생긴일이지요 뭐. 말은 뭐가 됐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친구가 되자 하셨는데… 저도 뭐가뭔지 사실 잘 모르겠는데 그 어떤(?) 친구가 되기 위해 저의 보폭을 안승준 선생님을 알아가는데 초점을 두려고 합니다. 안드레아형제님, 오늘 성당에서 ‘신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비라는 말이 너무나 새롭게 다가와서 집에 와서 신비의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일이나 현상 따위가 사람의 힘이나 지혜 또는 보통의 이론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만큼 신기하고 묘함, 또는 그런 일이나 비밀이라고 뜻풀이가 되어있네요. 우리들을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엮어주셨는지… 사람의 만남과 관계야말로 정말 신비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러한 신비를 깨닫게 하시는 형언할 수 없는 주님의 모든 신비를 경외하게 됩니다. 배려와 따뜻함과 겸손이 넘치는 안드레아형제님의 메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그로 인해 제 글을 여러 번 돌아 봅니다. 제가 안드레아형제님의 나이가 되려면 6년이 남았는데 그때는 저도 형제님처럼 경륜이 묻어나는 글을 쓸 수 있을지… 지금은 안드레아형제님의 인품과 그것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담아낸 글을 읽으며 놀라는 일 외에는 할 수가 없네요. 하느님께서 형제님께 많은 텔런트를 주신 것에 제가 감사를 드리게 되네요. 안드레아 형제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됐는지 모르겠네요^^ 이따 ‘교부들의 신앙’ 질문 1부,2부,3부… 중 1부를 보낼텐데 그러면 형제님께서 문명할 시간이 줄어드니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여러 가지 서적 덕분에 게임 시간이 하루 20분 내외거든요. 이 바쁜 와중에도 아예 안할 수는 없는 게 중독된 게임의 매력인데 저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게 이상하게 너무 좋습니다. 또 형제님께서도 위안삼을 한가지 소식은 우리가 이렇게 고뇌하는 동안에도 안승준선생님의 신천지(?) 한화는 지난주 내내 1승을 못하고 8연패의 늪에 빠졌답니다. 당연히 꼴찌 추락이지요. 신앙에 열심하는 우리를 어여삐 여기신 탓인지 엘지는 무려 2위,기아는 4위랍니다. 이런 걸 통해서도 인생의 수많은 신비를 경험하네요. ^^ 글이 길었습니다. 건강하겠습니다. 안드레아 형제님도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