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대륙
처음 목표로 했던 땅의 크기는 10×10km 혹은 100×100km였다(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구상했던 게임플레이도 지금처럼 여러 섬을 오가는 게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대륙에서 걸어다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거대한 대륙에서 모든 플레이어가 활동하는 상황에서는 우연히 얻은 명당이 지나치게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처음 배정된 위치나 근처의 강대한 세력에 의해 타의적으로 불쾌한 경험이 지속될 수 있음이 우려된 것이다. 또한 월드빌더에서 4×4km보다 큰 지형을 만들기 힘들었고(속도 문제), 레벨디자인에서 큰 대륙의 다양한 군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어서 거대한 대륙은 일단 포기하게 됐다.
거대한 대륙의 기술 기반까지 포기한 건 아니었다. 언젠간 16×16km짜리 섬도 만들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그때를 대비했다. 한 게임서버가 섬의 크기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도록 "청크"를 표준 단위로 삼고 섬 전체의 정보를 한 곳에서 다루는 일은 없도록 제한했다.
그렇지만 섬의 크기는 끝내 4×4km에 그쳤다. 섬 전체의 정보를 한 곳에서 다루지 않으려는 경향은 성능에 이롭지만 게임플레이 개발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섬 크기가 4×4km를 넘지 않는다고 못 박을 수 있다면 이 제한은 풀어도 될 것 같다.
창발적 게임플레이
저수준 규칙만으로 창발적 게임플레이를 촉발하길 추구했다. 고수준 규칙(예: 밥을 물에 끓이면 죽이 된다) 위주의 게임에선 최종 게임플레이를 게임디자이너가 일일이 설계해야 하지만, 저수준 규칙(예: 먹을 수 있는 것과 액체를 가열하면 끓인 무엇이 된다) 위주라면 훨씬 적은 설계로 더 다양한 게임플레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태그 기반 제작 시스템, 조립식 건축 등이 이 기조로 만들어졌다. 개발 초기에 "얼마나 저수준 규칙이냐"는 게임디자인 아이디어를 채택하는 데에 중요한 기준이었다.
단점도 컸다. 창발적 게임플레이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발산하는 경향이 있었다. 원치 않는 고수준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저수준 규칙만으로 제어하는 게 쉽지 않았다. 또한 저수준 규칙만으로는 "뭐든지 할 수 있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를 극복할 수 없었다. 이 단점을 메우기 위해 개발 후기에는 고수준 규칙을 추가하는 일이 많았다.
태그의 조합만으로 표현했던 아이템을 프로토타입이 구체화된 것으로 바꾼 것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 영속성과 단일 채널
듀랑고에선 MMO 영역 어디에든 건물을 지을 수 있다. 그 영향은 게임세계에 영속적으로 남는다(내구도가 다해 사라지더라도 게임세계는 그 건물의 존재로 다른 운명을 가지게 된 것).
사실상 모든 MMORPG가 "다중 채널"로 부하를 분산한다. 플레이어들이 같은 장소에 있다고 해도 채널이 다르면 서로 볼 수 없게 해서 한 번에 동기화해야 하는 플레이어의 수를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영속성을 위해선 "다중 채널"을 도입할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건물이 지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채널 없이 새로운 MMORPG 서버 아키텍처를 만드는 건 대단히 매력적인 도전이었다. 채널의 필요성을 완전히 배제하려면 너무 많은 플레이어들이 한 장소에 모일 수 없어야 한다. 게임디자인적으로 이것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적중하지 않았다. 결국 인구과밀에 의한 고질적인 성능 문제를 안고 가게 되었다.
낮은 액션성
플레이어의 신체능력(동체시력, 순발력)보다는 아바타의 능력치에 좌우되는 RPG를 만들고자 했다. 다만 〈마비노기 영웅전〉처럼 박진감 넘치는 연출은 포기할 수 없었다. "조작과 판정은 아바타 능력치 중심으로, 하지만 연출은 박진감 넘치게"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틱 단위로 촘촘한 동기화는 필요하지 않다. 플레이어와 세계의 동기화 지연시간은 최대 1초로, 노드 간 동기화 지연시간은 최대 0.5초로 설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