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만 있던 자, 움직이는 자

카테고리
드라마/영화
작성일
Sep 23, 2021 06:5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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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D.P.>와 <무브 투 헤븐>의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금이 마냥 좋기만 한 걸까?금이 마냥 좋기만 한 걸까?
금이 마냥 좋기만 한 걸까?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 -토머스 칼라일-
위의 문장이 실은 그리스의 한 철학자가 했던 말이 전해진 것이고 그때 그리스에서는 은이 금보다 더 비쌌단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오늘날의 '금'에 대한 가치를 이 문장에 그대로 적용하면 원래 문장이 가진 뜻을 완전히 오해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래도 금은 금이다. 많은 사람들은 금을 최고의 금속으로 치고 있으며, 부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금은 마냥 좋기만 한 걸까?
"침묵은 금이다"라는 문장은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전하거나 가벼이 입을 놀리는 행동을 경계한 말이다. 딱 거기까지다. 그 범위를 벗어나면 '침묵'의 '금'은 아무 쓸모 없는 돌이 되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되기도 한다.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할 때가 많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분명히 '아니오'라고 해야 할 때인데도 나는 그러지 못하고 '보고만 있던 자'가 된 적이 많았다. 그러면서 "'예'라고 하지 않았으니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다"라고 스스로 면피하며 그렇게 방관자가 된 적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그저 보고만 있었던 것. 그게 뭐 그리 나쁜 일이냐고?
 
D.P. : Deserter PersuitD.P. : Deserter Persuit
D.P. : Deserter Persuit
 
<D.P.>에서 안준호는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늑장을 부린 선임 박성우를 좀 더 채근하지 못했던 것, 박성우의 강압에 못이겨 그의 술자리에 휘말리게 된 것, 설상가상으로 자신이 쫒던 자살 직전까지 몰린 신우석에게 자신의 라이터를 건네며 그를 죽게 만든 모든 행동들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안준호의 마음을 꿰뚫었다. 근무 태만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박성우에게 폭발하여 선임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면서 안준호는 방관자 선임의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한다. 결국 자신도 그 상황을 '보고만 있던 자'였다. (물론 이러한 무차별적인 폭력을 옹호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 어떤 것도 폭력으로 풀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서 안준호 역시 극중에서 엄벌을 받게 된다.)
건물 옥상을 가로지르고 질주하는 차에 뛰어들고 칼을 휘두르는 탈영병 앞에서도, 그리고 총을 겨누고 폭주하는 조석봉을 마주하며 그를 필사적으로 설득하려는 안준호는 언제나 마음의 빚을 안고 있었다. 자신이 구하지 못한 신우석의 납골당을 찾은 안준호는 신우석의 누나를 만난다. 거기서 그녀는 안준호에게 아픈 질문을 던진다.
"왜, 보고만 계셨나요?"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
여기 청년 '한그루'가 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충실한 유품 정리사다. 누가 뭐래도 한 번 결심한 것은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그는 '움직이는 자'였다. 상황과 분위기가 주는 감정을 걷어낼 수 있었던 그루는 선혈이 낭자한 살인 현장에서도, 안타까운 사연이 깃든 이들이 머물다 간 자리에서도 의연하게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브 투 헤븐>에도 '보고만 있던 자'들이 용기를 내어 '움직이는 자'가 되는 모습이 여럿 그려진다. 그 중에 가장 안타까운 사건은 응급실에 난입하여 인질을 잡고 대치하는 환자와 협상하는 중 끝내 그 환자가 휘두른 메스에 목을 찔린 의사 정수현이 숨을 거두는 이야기다. 크리스마스에 자신이 근무하던 병원을 찾은 환자와 사랑에 빠졌고 그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가려던 정수현은 결국 집안의 반대로 사랑하는 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한그루는 정수현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가 사랑하던 사람이 여자가 아님을 알게 되지만 전혀 게의치 않는다. 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삼촌인 조상구에게 그루는 의문을 제기한다.
“사랑을 못하는 게 부끄럽지, 사랑을 하는 게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루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저하지 않고 실행에 옮긴다. 그런데 그루의 이런 '무조건적인 직진'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채로 세상을 살아가고 타인과 소통하는 그루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분명 그루에게도 싫은 것과 두려운 것이 있을 텐데, 그루가 보이는 한결 같은 '올바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에게 이런 올바름의 씨앗을 심어준 아빠와 엄마가 얼마나 훌륭하게 그루를 키웠는지 짐작이 간다. 그러니까 보고만 있던 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올바름의 부재가 아니라 올바름을 실천하려는 용기가 이닐까 싶다. 그 누구보다 바뀐 환경과 일상을 못견뎌하는 그루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던 건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용기는 얼어붙은 조상구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군에서 벌어졌던 부조리들군에서 벌어졌던 부조리들
군에서 벌어졌던 부조리들
삼풍 붕괴 참사삼풍 붕괴 참사
삼풍 붕괴 참사
 
<D.P.>와 <무브 투 헤븐>에는 지금도 신음하고 있지만 사회가 쉽게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소수자와 약자의 이야기가 많다. 두 드라마는 우리에게 '보고만 있던 자'에서 '움직이는 자'가 되기를, 침묵하지 말기를 촉구하는 듯하다. 침묵으로 얻은 금이 '마이다스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그리고 이러한 금들이 쌓이면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삼풍백화점 같은 엘도라도라는 사실을 말해주려는 것이리라.
마냥 어렸을 때라면 후임들을 갈구고 폭행을 휘두른 황장수나 형에 대한 복수심과 비뚤어진 마음으로 채워진 조상구에게 마구 돌을 던졌으리라. 하지만 슬픈 건 나도 그들과 별다르지 않는 '보고만 있던 자'임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스템에 속한 개인이 그 시스템의 어두운 면과 마주했을 때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어두운 면을 고쳐보려는 시도를 가로막고 그저 보고만 있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나는 그 요인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이를 꺼내놓고 말할 만큼의 용기가 없을 뿐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안준호와 그루가 부러웠다.
이런 찌질한 나에게도 작은 희망이 있다면, 나에게 남은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보고만 있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기회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한호열이나 윤나무와 조상구처럼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이 아직까지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그래서 그루의 아빠 한정원이 들려주는 말은 큰 위로와 울림으로 다가온다.
"보이지 않는다고, 곁에 없는 건 아니다. 기억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무브 투 헤븐-
 
마지막으로 신형철 님의 폭력에 대한 정의를 곱씹으며 좀 더 '움직이는 자'가 되어보려 결심한다.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 신형철,『슬픔을 공부하는 슬픔』(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