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아침을 먹어라

카테고리
가톨릭
작성일
Apr 10, 2021 12:36 AM
 
 
요즘은 로코(로맨스 코미디) 드라마가 인기다. 첫 눈에 반하든, 우연히 마주치든, 보슬비에 젖듯 천천히 스며들든,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는 심쿵한 이야기를 지켜보노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때로는 서로의 생각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하는 티키타카마저도, 싱그러운 봄 햇살처럼 달달하고 상큼하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더 깊어지고 어느새 사랑은 싱그럽게 영글어 간다. 많은 사람들이 로코를 보며 공감하는 건 그 끝이 해피 앤딩이건 새드 엔딩이건 상관 없이 두 사람이 걸어온 아름다운 여정 속에서 나의 빛났던 추억을 다시 꺼내 볼 수 있어서가 아닐까.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 중에서 제일 달달한 걸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요한 복음을 고를 것이다. 말씀이신 하느님이 빛으로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몰라본다. 제자들과 삼 년을 살았지만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으며, 그분을 세 번 모른다고 하거나 심지어 배신까지 했다. 그런데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던 그분에게서 제자들은 밥상을 받는다.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요한 21,9.12-13)
 
자신을 버리고 달아났던 제자들을 친히 부르시며 아침 상을 차려주시는 예수님,
당신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한 베드로를 그윽히 바라보시며 세 번이나 사랑 고백을 하게 만드신 예수님,
이게 달달하지 않으면 도대체 뭐가 더 달달하단 말인가?
 
눈으로 예수님을 보고, 숯불 위에 구워지는 고기의 냄새를 맡으며, 예수님이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이 집어주시는 음식을 손으로 만져보며, 그 사랑스러운 아침을 맛보는 제자들. 예수님은 이렇게 오감으로 당신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실감하게 하신다.
로코가 연인들의 사랑과 그 열정을 이야기한다면, 요한 복음은 이보다 더 절절한 예수님과 우리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요한의 첫째 편지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1요한 4,7-8)
 
나는 오늘도 예수님을 만나러, 예수님께서 차려주시는 상을 받으러 간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에게 밥이 되어 주신다.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내 피다.”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먹으라고 내주신다. 코로나19가 기세를 부리는 동안 온라인 미사를 드리느라 얼마나 성체가 고팠던가? 이렇게 다시 성체를 영할 수 있는 일상이 어찌 심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 성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웬지 더 가벼울 것 같다.